60년 건설사에 처음 있는 일
60년 건설사에 처음 있는 일
  • 남경훈 <편집부국장>
  • 승인 2011.11.13 18: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발주하는 관급(官給) 공사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건설업체들은 업종특성상 손해가 가는 정책결정이라도 큰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했다.

공사발주가 정부에 의해 이뤄지고 공사감독이나 대금지불이 모두 정부에 의해 결정되면서 감히 대들 수 없는 갑과 을이라는 특수한 관계 때문이었다. 그래서 업역(業域) 보호를 위한 그 흔한 집회 한 번 없었다.

그러나 지난 10일 서울 반포동에 있는 서울지방조달청 앞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장면이 펼쳐졌다.

전국 각지에서 2000여 명의 중소 건설사 관계자들과 건설협회·단체 사람들이 몰려와 각종 팻말과 구호가 써 있는 두건을 두르고 ‘최저가낙찰제 공청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구호는 오직 하나다. ‘최저가 낙찰제 확대를 철회하라’였다.

제조업과 달리 건설업계서 집단으로, 그것도 일반 노동자가 아닌 중소 건설사 대표 등 경영진이 적극 시위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기획재정부는 현재 300억원 이상인 공사에 한해서만 최저가낙찰제를 시행하던 것을 내년 1월부터는 100억원 이상인 공사로까지 확대하겠다며 정부 입법을 앞두고 공청회를 연 것이다.

기재부는 건설공사 발주를 할 때 예산에 낀 거품을 제거하고 공직자 비리 등을 막기 위해 최저가낙찰제의 확대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현재 건설업계의 입장에서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더욱이 이번 확대적용 구간이 지방 중소건설업체들이 대부분 수주하는 금액으로, 경쟁력에서 대기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역 중소업체들로는 이제 업(業)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빚어진 셈이다.

대한건설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최저가낙찰제가 확대 시행될 경우 100억~300억 규모의 중형공사 수주액이 8% 정도 하락하고 견적능력이 부족한 중소업체들이 대기업에 입찰시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져 전체적으로 지역 중소업체의 몫 중 7100억원 정도의 수주물량이 사라질 것으로 추산됐다.

수주물량이 줄면 원가절감을 해야 할 기업 입장에서는 근로자 임금부터 줄여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근로자의 임금이 줄거나 실직하게 되면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지역경제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여기에 정부 예산을 관장하는 기재부만 유독 이를 주장하고 있다.

국토부, 지경부, 방송위, 노동부, 환경부 등은 여러 이유를 들어 반대입장이다. 여기에 지자체들도 최저가낙찰제 확대 시행을 유보할 것을 건의하고 있다.

가뜩이나 건설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또다시 가격경쟁을 유도하는 것은 고통을 강요하는 정책일 수밖에 없다.

업계 분석결과, 지난 2006년 최저가낙찰제가 500억원에서 현행 300억원 이상 공사로 확대된 이후 업체들이 공사비를 줄이려고 임금이 저렴한 외국인 근로자들을 주로 채용하면서 연 평균 5만6000개의 내국인 일자리가 사라지고 일용직 등 미숙련 근로자들의 산업재해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감소뿐 아니라 하도급·장비·자재 업체는 물론 연관 산업이 연쇄적인 타격을 받아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이번 문제는 단순 예산절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때문인지 이날 집회에 참가했던 충북지역 한 중견 건설사 대표의 “우리 업계가 단체로 모여 정부에 항의한 것은 60년 건설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