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사 뒤뜰 은행나무
운문사 뒤뜰 은행나무
  • 연지민 <교육문화부장>
  • 승인 2011.11.09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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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 문태준 -

비구니 스님들 사는 청도 운문사 뒤뜰 천년을 살았을 법한 은행나무 있더라
그늘이 내려앉을 그늘자리에 노란 은행잎들이 쌓이고 있더라
은행잎들이 지극히 느리게 느리게 내려 제 몸그늘에 쌓이고 있더라
오직 한 움직임
나무는 잎들을 내려놓고 있더라
흘러내린다는 것은 저런 것이더라 흘러내려도 저리 고와서
나무가 황금사원 같더라 나무 아래가 황금연못 같더라
황금빛 잉어 비늘이 물속으로 떨어져 바닥에 쌓이고 있더라
이 세상 떠날 때 저렇게 숨결이 빠져나갔으면 싶더라
바람타지 않고 죽어도 뒤가 순결하게 제 몸 안에 다 부려놓고 가고 싶더라
내 죽을 때 눈 먼저 감고 몸이 무너지는 소릴 다 듣다 가고 싶더라



※ 절집나무도 절집사람을 닮아가나 봅니다. 운문사 뒤뜰에서 천년을 보낸 은행나무 노랗게 내려앉습니다. 누적된 시간을 비워내듯 나무는 수천, 수만 조각으로 길을 냅니다. 시나브로 제 밑둥으로 쌓여가는 잎들, 퍼즐처럼 대지와 입맞추며 점점이 노랗게 번져납니다. 나무는 말없이 서서 사는 것이 내려놓는 거라고, 온전한 나로 돌아것이라고, 서걱대며 소진된 몸으로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천년 몸짓으로 보여줍니다. 고와서 눈물겨운 낙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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