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지배의 아픔 문화유적으로 고스란히
침략·지배의 아픔 문화유적으로 고스란히
  • 엄갑도/전 충북중앙도서관장
  • 승인 2011.11.03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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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갑도의 발로쓰는 발칸반도 여행기
<20>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스코페

모든 버려진 사람들의 어머니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의 고향

15세기 건축 돌다리 '까멘로스또'

신구 시가지 이어주는 가교 역할

발칸반도서 가장 화려한 동방시장

이슬람 등 다양한 문화 융합 눈길

성 깔레 요새서 전쟁 아픔 느껴져

화합 다짐 십자가 영원히 빛나길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는 인구 50만의 도시로 생각보다 작은 도시였다. 이 도시는 로마시대에 건설되어 비잔틴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 후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았으며, 1,2차 세계대전 후에는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에 편입되었다가 1991년 유고로부터 독립 후 마케도니아의 수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많은 이민족의 침입과 지배로 다양한 형태의 문화유적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가 처음 찾아간 곳은 신시가지 마케도니아 광장 끝부분 번화한 도로변에 있는 마더 테레사 기념관이었다. 마더 테레사는 1910년 이곳 마케도니아 스코페에서 태어나 18살 때 수녀가 되어 인도의 캘커타로 건너갔다. 1928년 테레사로 개명한 후 거기서 무려 45년 동안 사랑의 선교회를 통해 빈민과 병자, 고아,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서 헌신하면서, 세계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는 인도주의자로 활동했다. 이런 테레사 수녀의 헌신에 전 세계가 감동을 받았고, 1979년에는 테레사 수녀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으며, 1980년에는 인도의 가장 높은 시민 훈장인 바라트 라트나(Bharat Ratna)를 수여했다. 그리고 1983년 영국 명예 메리트 훈장(honorary Member of the Order of Merit)을 받기도 했다. 1997년 테레사 수녀가 사망하자 인도에서는 국장으로 그녀의 장례를 엄숙하게 거행해 주었고,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를 '캘커타의 복녀 테레사'라는 호칭을 주었다. 성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마케도니아 정부는 이와 같이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마더 테레사를 기리기 위하여 테레사 수녀가 세례를 받은 '예수성심성당 터'에 테레사 동상과 함께 테레사 기념관을 2010년에 건립했다고 한다. 기념관은 그리 크지는 않았으나 아담하고 소박했다. 기념관 앞 도로변에 테레사 수녀 동상이 건립되어 있었고, 기념관 1층은 기념품 판매소와 안내실이 있었다. 2층은 생전의 그녀 사진들과 종신 서약서를 비롯하여 그녀의 필체가 담긴 기도문 편지들과 유물, 그녀가 사용했던 침실과 식탁 등 각종 생활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3층은 엄숙한 곳으로 그녀를 '기억하며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 성당으로 꾸며져 있었다. 이곳에서 그녀의 숭고한 일생을 다시 한 번 흠모하면서 기도를 올리고 기념관을 빠져 나왔다.

마케도니아 광장으로 나오자 그 넓은 광장에 많은 마케도니아 시민들이 나와 각종 행사를 즐기고 있었다. 특히 오늘은 우리나라의 어린이날에 해당하는 날이라 마스킨 볼이라 하여 어린이 얼굴에 가면을 씌우고 화장을 하고 또 예쁜 옷을 입혀 부모님들이 손에 손잡고 함께 나와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들의 문화와 행동양식이 이채로워 유심히 쳐다보고, 그들은 낯선 동양인들의 무리가 기이해서 쳐다보고, 그러다 우리들도 그들도 웃으면서 지나치고 있었다.

마케도니아 광장 이곳저곳, 특히 돌다리 옆에는 이 나라의 많은 영웅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대부분이 최근에 세워졌다고 한다. 광장 이곳저곳을 구경하면서 광장 끝으로 나오자 바르다르강이 흐르고 이 강을 가로질러 돌다리가 세워져 있었다. 이 돌다리는 '까멘로스또'라고 하는데 15세기에 터키식으로 건축된 돌다리로 스코페의 상징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이 돌다리가 신구(新舊) 시가지를 대표하는 마케도니아 광장과 스코페 재래시장을 잇는 가교(架橋)였다.

이 돌다리를 건너 구시가지로 왔다. 이 돌다리 옆에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자랑하는 키릴문자를 발명한 키릴 형제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다시 발칸반도 재래시장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는 동방시장의 거리를 거닐면서 희한한 모양의 조각상들도 볼 수 있었다. 전통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구시가지였다. 히잡 쓴 여인들이 자주 눈에 띄고 있어 이슬람국가 같다는 착각을 하게 하였다.

우리는 시간 관계로 동방시장의 일부만 구경하고서 발칸반도 최대의 터키탕이었던 다우트 파샤 목욕탕으로 왔다. 여러 개의 둥근 돔으로 건축되어 있어 한눈에 터키식 건물임을 알 수 있었다. 현재는 국립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내부로 들어가니 아름다운 미술품이 벽에 걸려 있고 조각들도 잘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미술품이나 조각들보다 내부 벽들, 특히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는 붉은 벽돌에 더 관심이 갔다. 천장에 별처럼 구멍이 나 있는 구조 등 샅샅이 살펴 본 후 밖으로 나왔다.

다음은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슬람 건축물이라는 무스탑하 파스하 이슬람 사원, 무슬림 모스크와 그리스 정교회인 스베티 스파스 교회 등을 둘러보면서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정교와 이슬람교가 융합되어 이루어진 흥미롭고 독특한 문화를 가진 나라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늘 관광의 마지막 코스로 언덕 위에 있는 깔레 요새를 서둘러 찾았다. 웅장하고 높은 성 깔레 요새!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재건되고 10-11세기에 확대 건설하여 완성하였을 것이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1963년 지진으로 일부가 무너졌으나 2006년 정부 지원으로 발굴과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1963년 지진 때는 3,000여명의 사상자와 엄청난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석회암으로 지어진 요새는 중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이런 고성을 볼 때마다 전쟁의 아픔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어느덧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의 서녘 하늘에 아름다운 붉은 노을이 사라지고 어스름이 찾아들고 있었다. 높은 언덕에 있는 고성에서 저 건너 아래쪽을 쳐다보니 전등불빛 휘황찬란한 큰 건물이 눈에 띄는데 미국 대사관이라 한다. 그리고 눈을 돌려 건너편 산을 보니 산꼭대기에 대형 십자가가 불을 밝힌 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십자가는 1991년 전쟁의 종식과 화합을 다짐하는 뜻에서 세워졌다고 하는데 지금은 관광객의 시선을 끄는 명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 마케도니아란 나라에 와서 그 위대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뜨거운 숨결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알렉산더 대왕의 뜨거운 숨결은 간곳없고 마케도니아인과 알바니아인 간의 민족 간 종교 간의 분쟁이 걱정되는 심사는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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