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의 대제국 영광은 어디로…
알렉산더 대왕의 대제국 영광은 어디로…
  •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 승인 2011.10.2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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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갑도의 발로쓰는 발칸반도 여행기
<19> 약소국으로 전락한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인구 약 203만9천명·1인당 국민소득 4400弗

빈번한 왕래 교차점… 유럽·아시아 주요 문화적 전통 공존

오전 10시 30분 베오그라드를 출발했다. 다음 목적지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까지는 약 7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가이드는 말했다.

가는 도중에 점심도 먹고 중간 중간 잠간씩이라도 쉬면서 간다고 하지만 참으로 긴 장정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4월의 하늘은 유난히 맑고 푸르러 기분은 상쾌했다.

도심을 벗어나자 넓게 펼쳐지고 있는 평원과 농장, 그리고 구불구불 높은 산을 끼고 달리면서 보게 되는 초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떼와 양떼들, 그러다가 산자락 언덕에 자리 잡은 붉은 지붕의 고만고만한 집들이 평화롭게 보이는 마을들. 이렇게 계속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광들을 보고 가노라니 그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동화 속을 헤매는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달리는 차 속에서 오늘 우리가 찾아가고 있는 마케도니아란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에 대해 가이드는 계속 설명하고 있었다. 간략히 정리해 보면, 현재의 마케도니아는 북쪽으로 코소보와 세르비아, 동쪽으로 불가리아, 남쪽으로 그리스, 서쪽으로 알바니아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수도는 스코페, 마케도니아어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구는 약 203만9,000명 정도인데 그리스도교 전통의 동방정교회를 믿는 마케도니아인이 70% 정도이고 이슬람교를 믿는 알바니아 터키인 등이 30% 정도라고 한다. 면적은 2만5,713로 우리 남한의 1/3 정도로, 현재는 작은 나라이다.

그러나 마케도니아는 기원전 4세기경 알렉산더라는 걸출한 대왕이 그리스를 평정한 후 페르시아 시리아 이집트 등을 정복하고, 아시아로는 인도의 인더스강까지 동진하여 도처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하면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던 나라였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 국력이 쇠퇴하여 이웃 나라들, 특히 로마와의 전란 속에 영토를 상실하였고, 전통적으로 마케도니아로 알려진 발칸 반도 남쪽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발칸반도전쟁이 끝난 1913년 이후 다시 이웃 나라들에 국토의 일부를 빼앗겨 현재는 이 지역의 2/5 정도만이 스스로 마케도니아라고 부르는 독립국가가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마케도니아는 1371-1912년까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는 발칸 전쟁(1912~13)으로 종결되었고, 발칸전쟁 후 1913년 마케도니아 일부가 세르비아에 할양되었으며, 1919년에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 결성될 때 그 나라의 일부가 되었다(그 후 유고슬라비아로 개명). 유고슬라비아가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1년에 추축국들에 의해 분할될 때 불가리아가 유고슬라비아의 마케도니아 전역을 차지했다. 1944~45년에 유고슬라비아가 해방된 후 마케도니아는 재편성된 유고슬라비아 국가의 일부가 되었고, 1946년에 이 국가를 구성하는 6개 공화국의 하나가 되었다. 그 후 동구권 변혁의 열기 속에서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붕괴되면서 1991년 12월 19일 독립을 선언하였고, 마케도니아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이 되었다.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라는 명칭을 국가명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그리스 북부지방을 의미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우려를 표명했기 때문에 새로운 공화국은 마케도니아 구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이라는 명칭으로 국제연합(UN)에 가입했다고 한다.

마케도니아는 나라의 크기나 인구 규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지정학적 위치는 빈번한 왕래가 이루어졌던 길들의 주요 교차점이라는 면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결국 마케도니아는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문화적 전통들이 복합되어 공존하는 경계 지역이 되어 있다고 한다. (브리태니커 참조)

최근 코소보사태 등으로 대규모로 이주해 온 알바니아인, 그리고 알바니아인들의 높은 출산율 등으로 알바니아인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차별 정책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 오다 권리 신장을 요구하면서 2001년에는 알바니아계 반군들이 정부군에 공격해 와 북부와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내전이 벌어졌다. 이 내전은 중재에 나선 북대서양조약기구 휴전 감시군이 개입하면서 끝이 났다. 마케도니아 정부는 알바니아계의 권리신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오호리드 협정을 내놓았고, 이를 알바니아계가 수용함으로써 모든 마케도니아 체제를 완전히 인정하기로 해서 일단 안정을 회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알바니아 난민의 대규모 유입으로 인해 아직도 나라가 심각하게 불안정한 상태라고 한다.

마케도니아의 경제는 국명(國名) 문제로 인한 그리스의 경제 제재와 내전 등으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곤란을 겪고 있으나 최근 외국의 도움을 받아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는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1인당 국민소득이 4400$(2009년) 정도로 빈곤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한다. 주로 밀·보리·옥수수·담배·목화·쌀·해바라기·사탕무를 재배하며 양과 소도 많이 사육하는 농업국가라 한다.

오후 4시경에 마케도니아 국경 검문소에 도착했다. 검문소에서 입국절차를 밟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우리 일행이 입국절차를 밟는 데 거의 1시간가량이나 걸려 오후 5시경에야 통과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지 않은 나라가 3개국인데, 시리아 쿠바 마케도니아라고 한다. 아직 수교를 맺지 않은 나라이어서 외교적 행정절차가 까다로워서였을까.

국경검문소를 통과하여 마케도니아로 접어들자 도로변에는 벚나무 개나리 등 꽃나무들이 붉은꽃 노란꽃 흰꽃들을 꽃피우고 있었고, 농장에는 파아란 밀 싹들이 돋아나 신록 벌판을 이루고 있었다. 비옥한 옥토와 평화로운 들판, 거기다 낮은 산 밑으로 높고 낮은 구릉을 이루면서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 우리들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주고 있어 다행이었다. 이 아름다운 농촌마을이 이어지면서 오후 5시 30분경에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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