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10 >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10 >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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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정원 시후(西湖.서호)
▲쑤저우 사람들은 땅위에 개인정원을 짓고 향저우 사람들은 호수에 아름다운 정원을 조성해 풍류를 즐겼다. 사진은 항저우의 호수정원 ⓒ 함영덕

두 번째 여정으로는 시후 10경(十景) 중에 하나인 곡원풍하(曲院風荷)의 풍경이 깃든 북서쪽의 유람선 선착장으로 갔다. 선상에 누각을 지은 유람선들이 호수 도처에 떠 있다. 시후의 물빛은 중국의 다른 호수나 강물에 비해 푸른 편이다.

남색 빛을 띠고 있어 다른 호수에 비해 맑게 보이나 우리나라의 물처럼 물속이 투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중국에서 이런 정도의 남빛 물결을 본다는 건 흔치가 않다. 40일간 광활한 중국대륙 여행에서 2,000m의 암벽지대인 후난(湖南)성의 장자지에(張家界)와 쓰찬(四川)성의 3,000m 이상의 고산지대인 지우자이거우(九寨溝) 두 군데서 만이 바닥이 보이는 투명한 물을 볼 수가 있었다. 중국의 차(茶) 문화가 발달한 이유를 대륙을 여행 하게 되면 저절로 이해하게 된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시후는 맑은 물이라 할 수 없지만 붉은 황토물만 보던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후는 푸르고 맑은 호수라고 부를 수 있다.

시후는 항저우 시내 서쪽에 펼쳐진 둘레가 15km, 면적은 5.6km2로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천연호이다. 강릉 경포호보다 4배 정도 더 큰 규모다. 시후는 호수를 크게 두 제방 둑으로 나눈 바이띠(白堤)와 쑤띠(蘇堤)가 있어 다른 지역의 호수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당나라 때 항저우에 자사로 부임한 시인 백낙천(白樂天)이 쌓은 1km의 바이띠와 송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쌓은 2.8km의 쑤띠가 호수 면을 가르고 있다. 당시의 시인 묵객들이 늘어선 수양버들 속을 거닐며 인생을 노래한 추억의 장면들이 연상되는 정감 있는 뚝 방 길이 호수의 운치를 돋우고 있다.

백낙천과 소동파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만든 두 개의 제방에 의해 시후의 본 호(湖)인 외호(外湖)와 쑤띠에 의해 악호(岳湖), 서리호(西里湖), 남호(南湖)로 나뉘어 지고 바이띠에 의해 북리호(北里湖)로 5개의 호수가 인공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호수 가운데엔 수목이 우거진 섬들이 세 개가 떠 있고 섬마다 정자나 누각이 있어 유람선을 정박시키고 있다.

섬 외곽은 수양버들과 플라타너스로 늘어서 있고 목련과, 국화, 매화 등과 이름모를 수많은 진귀한 남방의 꽃들과 나무들이 사시사철 피고 지는 아름다운 인공섬들이다. 한 잔 술에 인생을 노래하고 풍경에 취해 시 한 수를 읊던 옛 사람들의 정취를 음미해 본다.

선착장에서 1일유(一日遊)에 참가한 중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시후 가운데 삼담인월(三潭印月)이라는 이름이 붙은 가장 큰 섬으로 출발하였다. 짙은 남빛 물결을 가르며 호반을 바라보니 나도 백낙천이나 소동파가 된 것 같은 기분에 피로가 저절로 풀린다. 선착장에 도착하여 섬을 둘러보니 뜻밖이었다.

시후 바닥을 파서 축조한 것으로 호수 안에 섬을 만들고 섬 안에 또다시 호수를 만들어 연꽃을 기르고 붕어 떼들이 노닐게 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연못 안에 돌로 만든 아기자기한 다리를 연이어 짓고 정자를 만들어 이름을 붙이는 항저우 사람들의 정원 축조술과 미적 감각이 부러울 뿐이다. 시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호수정원이라 말하고 싶다.

땅 위에 개인 정원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사람들이 쑤저우(蘇州)라면 호수에 아름다운 정원을 조성하여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은 항저우다. 호수정원과 지상정원 과의 차이가 두 지역 관광의 차이점이라고 보고 싶다.“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소항(下有蘇杭)”이란 문구가 항저우에 도착하면 제일먼저 눈에 띄는 데,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항저우와 쑤저우가 있다는 두 도시의 명성과 자부심의 발로일 것이다.

시후 주변을 부드럽게 둘러싼 산들은 물안개에 젖어 있고 아리따운 여인의 치맛자락처럼 휘날리는 버들잎이 허공을 흔든다. 누가 이 넓은 호수위에 정원을 만들고 그 풍취에 젖어 술잔을 기울였단 말인가. 월(越) 왕 구천이 오(吳) 왕 부차에게 항복하고 바친 미녀 서시(西施)도 이 시후에서 비파를 타며 요염한 교태로 부차의 넋을 빼앗아 놓지 않았을까.

천하제일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 4대 미인 가운데 하나인 서시를 기념하기 위하여 서자호(西子湖)라고도 불리는 시후를 바라보며 그 명성이 헛되지만은 아닌 것 같다. 섬 한 가운데 있는 호심정(湖心亭)가에 늘어선 버드나무 숲에서 오나라를 망치게 한 경국지색의 미인 서시가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에 반하지 않을 영웅호걸이 있었을까. 버들잎이 일렁이며 다가와 가슴을 쓸어내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선착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섬의 남쪽 선착장 앞 호수 면에는 1621년에 세워진 높이 2m 가량의 석탑 3개가 서 있다. 이 석등에 불이 켜지면 마치 작은 달처럼 보이는 것이 운치가 일품이어서 ?삼담인월(三潭印月)이라는 명성이 붙은 시후 10경중에 제일로 꼽는 명소이다. 안광(眼光)에 시후의 바람을 담아본다. 언제 다시 이곳에 와서 시 한 수를 논하며 취할 수 있을까.

나는 옛 시인묵객들이 읊던 시후 10경(景)을 떠 올리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보았다. 삼담인월(三潭印月)의 달 밝은 밤 선상에서 비파를 연주하는 가냘픈 옷자락과 달빛을 머금은 여인의 눈동자를 떠올려 본다.

북송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1071년과 1089년 두 차례에 걸쳐 항저우의 자사로 부임하여 춘하추동 시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 20만 명의 사람을 동원하여 시후을 개수(改修) 하였다 한다. 시후 바닥의 흙을 이용하여 제방을 쌓은 이 길을 후세에 그를 기려 쑤띠(蘇堤)라고 이름 지었다 한다.

수양버들과 복사꽃이 만발한 이른 봄날 아침 안개가 자욱한 이 둑길을 걸어가는 것이 가장 일품이라는 '소제춘효(蘇堤春曉)'의 전경을 생각하며 시후의 잔물결을 가슴에 담아본다.

한 폭의 산수화인 ◇쌍봉삽운(雙峰揷雲)과 설봉탑에 노을이 물드는 석양의 아름다움이 일품인 ◇뇌봉석조(雷峰夕照), 여름철 연못에 핀 아름다운 연분홍빛 연꽃과 술 향기가 바람에 실려 주변을 풍미하는 곡원풍하(曲院風荷), 화항(花港)에 송나라 때 한 관료가 이곳에 누각을 짓고 고기를 기르며 풍류를 즐겼다 하여 붙여진 화항관어(花港觀魚). 문앵관(聞鶯館)에 앉아 복사꽃 필 무렵 하늘거리는 버들잎과 꾀꼬리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것이 일품이라는 유랑문앵(柳浪聞鶯), 저녁 어스름 무렵 호수 가에 고즈녁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듯 아름답다고 칭송한 남병만종(南屛晩鍾).

겨울철에 바이띠에 눈이 쌓이면 다리의 중앙에서부터 쌓인 눈이 녹아 내려서 지면이 드러나는데 이것을 보석산(寶石山)에서 바라보면 눈이 녹은 부분이 다리가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여 그 아름다움을 칭송한 단교잔설(斷橋殘雪), 달 밝은 가을밤 거울같이 잔잔한 시후에 보름달이 뜨면 호수 가에 어리는 아름다운 그림자와 달빛을 바라보는 평호추월(平湖秋月)이 담긴 풍류의 호반이다.

시후 10경을 음미하며 유람선은 천천히 물살을 가르고 눈부신 햇살은 땀을 적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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