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12 >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12 >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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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후(西湖)의 야경
▲실크로드

숙소를 정하고 시후 부근의 맛있고 대중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는 루외루(樓外樓)로 식사를 하러 갔다.

항저우에 도착한 아침에 장자지에(張家界) 행 열차 표를 예매하려 했으나 표를 구할 수 없었다. 저녁식사 후 다시 찾아 갔지만 좌석조차 없어 매우 난감하였다. 할 수 없이 입구에서 암표상을 만나 30%의 웃돈을 주고 중간에서 갈아 탈 수 있는 표를 구했다. 유나양은 꾸이린(桂林)으로 떠나기로 하여 마찬 가지로 침대차 암표를 구입했다. 23시간 정도 걸리는 열차여행을 앉아서 밤을 지새운다는 것은 다음 여행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표를 환불할 때는 20% 할인되어 환불받는다. 후미진 역전 골목에서 밤 11시 경에 다행히 표를 구할 수가 있었다.

시후의 야경이 보고 싶어 정군과 같이 택시를 타고 가로등 불빛이 늘어선 호수 가에 숲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커다란 프라타너스와 수양버들이 늘어진 가로수 길과 호반을 늘어선 가로등 불빛이 시후의 밤경치를 더욱 운치 있게 만들고 있다. 가로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겼고 가끔씩 연인들이 벤치에 앉아 정담을 나누거나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정겹다.

하늘엔 물기 머금은 구름이 퍼져 있어 시후는 깊은 정적에 잠들어 있다. 광활한 호수주변을 감싸고 있는 가로등 불빛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시후를 둘러싸고 있는 야트막한 산들이 희미한 산자락으로 호반을 겹겹이 끌어안고 있어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시후의 야경을 보지 않고 시후를 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초승달 한 조각이라도 호수에 띄워 주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심안(心眼)으로나마 달빛 비치는 물결 위에 배 한척 띄워놓고 가야금 소리를 호반에 풀어 본다. 호수가 안개처럼 가슴에 스며든다. 달 밝은 밤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애절한 노래 가락에 혼이 빼앗긴 청춘의 봄을 상상해 보라. 시후의 다양한 모습을 찾으려고 어둠 저편 호수 곳곳을 음미해 보았다. 교각위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화석처럼 뜨겁게 포옹하는 젊은 남녀의 모습도 보인다.

동해바다와 연해있는 경포호수를 보면서 늘 가슴속에 간직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오늘 시후에 와 보니 그 답답한 갈증이 확 풀리게 되었다. 경포대와 시후를 비교하면 송강 정철이 관동팔경을 노래하던 경포대는 둘레가 12km로 현재보다 3배정도 큰 호수였다. 바다와 호수와 송림과 아름다운 주변의 경관을 합치면 시후보다 규모가 조금 작을 뿐 자연조건은 훨씬 더 뛰어나다.

그런데 강릉 남대천의 물줄기를 바다로 향해 직선으로 뚫고 경포호수 주변을 증산운동의 일환으로 둑을 만들고 주변의 습지를 논으로 만들어 옛날 호수의 크기를 3분의 1로 축소시켜 놓았다. 관광 개념이 없는 시절에는 쌀 한 톨 더 증산시키는 것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좀 더 긴 안목으로 경포호수를 지키고 보존했더라면 주변 몇 마지기의 쌀 수확보다 몇 백 배 더 소중한 관광자원으로 가꾸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수 십 만의 인력을 동원해 제방을 쌓고 호수의 진흙을 파서 섬을 만들고 섬 안에 연못과 정자를 지어 호수정원을 만드는 중국인들의 풍류와 자연을 이용하는 안목이 오늘날 후손들에게 엄청난 관광수입을 가져다주는 그 역사적 혜안이 몹시 부러울 뿐이다. 둘레가 15km인 시후를 하나의 정원으로 생각하여 인간이 인공적인 노력과 애정을 가지고 오랜 세월 가꾸어 온 것이지 자연 그대로의 시후의 모습이라면 도시 주변에 있는 볼품없이 크고 황량한 호수에 불과할 것이다.

중국의 산하는 척박한 황토 흙으로 되어 있어 강물은 우리나라 홍수 때의 황톳물과 같다. 경포호반을 걸을 때마다 주변의 논을 파서 없애고 수로를 놓고 누각을 세우고 호수 한 가운데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그런 호수정원 문화를 꿈꾸어 왔었는데 시후에 오니 중국인들은 먼 옛날부터 이미 현실화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시후를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시후의 자연경관 보다는 그것을 가꾸었던 중국인들의 부단한 노력과 의지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도시 가운데 하나인 라스베가스도 사막 한 가운데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만든 인공도시이다. 가장 열악한 자연조건을 극복하고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도시로 만든 것도 바로 인간의 생각이며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후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동해바다가 있는 경포호수를 하나의 정원으로 생각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원래 경포호로 복원하고 테마가 있는 호수공원으로 조성한다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명소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시후를 감상하는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호수의 숨겨진 얼굴은 계절에 따라 다르고 달마다 변하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날씨에 따라 다른 모습과 표정을 짓고 있다.

또 바라보는 위치와 호수가 받는 햇빛의 각도에 따라 같은 시각이라도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특히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호수를 바라보는 심상(心象)이다. 이별의 정한으로 바라보는 호수는 슬픔의 물결이지만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는 기쁨으로 바라본다면 호수의 물결은 보랏빛 설레임일 것이다. 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세상의 모든 형상이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시후를 거닐다 호텔 근처에서 느닷없이 몰아치는 소낙비를 맞았는데, 갑자기 그치는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매우 당황했다. 항저우의 날씨는 워낙 변덕스러워 비옷이나 우산을 항상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카메라나 캠코더 같은 장비가 비에 젖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언제 시간이 허락한다면 복사꽃 피고 수양버들 늘어진 봄 물안개 자욱한 이 길을 다시 한 번 걷고 싶다.

항저우는 쑤저우 보다 숙박인심이 좋아 3인 1실 호텔방을 얻어 편안히 잘 수 있었다. 중국에는 온돌식 방은 없고 침대가 서양처럼 일상화 되어있다. 유나양은 내일 꾸이린(桂林)으로 해서 홍콩으로 출국한다고 한다. 모처럼 늦게 까지 푹 자고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탕수육과 계란볶음밥, 야채에 돼지고기를 볶은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중국에서 장거리 여행을 할 때는 햄버거를 사서 가져가는 것도 좋은 방편이다.

상하이와 쑤저우, 항저우 어디서나 햄버거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층으로 된 수백 석 규모의 가게는 만원이다. 기차에서 파는 중국인들이 먹는 음식은 느끼하고 느글거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먹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햄버거는 장거리 여행에서 가장 간편하고 우리의 입맛에 맞아 대륙여행 내내 가장 많이 애용한 음식이다.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시가지는 깨끗하고 마음도 상쾌해 진 것 같다. 12시 30분 항저우 동역(東驛)에 도착하여 유나 양을 배웅하였다. 동역은 항저우 본래 역사가 아니고 동쪽에 있는 작은 역을 말한다. 여기서 꾸이린 까지 23시간 걸리는 기차여행이다. 상하이에서 유나 양과 우연히 만나서 이곳까지 동행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외롭지 않게 여행하게 되어 퍽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여행의 묘미는 우연히 만난 사람과 동행하고 또 갈 길이 달라지면 부담없이 떠나가는 그런 만남도 있어 아름답다. 민국이는 유나 양과 같은 세대라 몇 칠 동안 재미있게 지낸 것 같다. /함영덕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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