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18 >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18 >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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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루슈위엔(岳麓書院.악록서원)
▲양수 오거리

후난지역 천년 인물의 산실이 바로 여기구나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중국 4대 고대 서원 중에 동양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으뜸가는 서원이다.

시비를 모신 누각 옆을 돌면 커다란 암석에 빼곡하게 글을 써 넣은 녹산시비(麓山詩碑)가 기다리고 있다. 대나무 숲 담장너머로 야트막하게 자리 잡은 푸른 동산이 평화롭게 앉아 있다. 교학제(敎學齊)로 오면 춤과 악기를 연주해주고 관람료를 받는다. 우측 현관으로 나오면 청소년 시절의 마오쪄뚱(毛澤東)의 사진이 걸려 있다.

마오쪄뚱을 가르쳤다는 양창제의 사진과 족적들을 전시해 놓았다.

마오쪄뚱은 후난성 상담(湘潭)의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19세 때 신해혁명에 참석하였고 창사사범학교(湖南師範學敎)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송나라 주희(朱熹), 주희급 문인들과 왕양명(王陽明) 등의 양명학파(陽明學派) 인물들, 중국 근대사의 유명 인물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후난(湖南)은 중국사에 위대한 영향을 끼친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초나라 굴원과 송나라 주희, 왕부지(王夫之)등이 있으며 마오쪄뚱을 비롯한 유소기(劉少奇)와 호유방(胡耀邦), 팽덕회(彭德?), 주룽지(朱鎔基)같은 중국공산당의 중요 인물들을 배출한 역사와 문향의 고장이다. 중국 고전과 근현대사의 주역들의 자취를 더듬으며 위에루슈위앤에서 아쉬움의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중국 공산당의 태두인 마오쪄뚱이 교사가 되기 위해 후난사범학교에서 수학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창사는 시내 곳곳이 파헤쳐지고 새로 짓는 건물들로 인해 도시는 활기에 차있다. 오후 3시 15분 창사시 동쪽 2km 쯤에 위치하고 있는 후난성 박물관에 도착했다. 주로 마왕뚜이한묘(馬王堆漢墓.마왕퇴한묘)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서한(西漢) 초기 장사국(長沙國) 재상과 그의 부인 및 아들의 묘가 있는 유적지다. 발견 당시 시신의 보관상태가 좋아서 각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한다. 미이라의 보존상태가 좋았던 이유는 마와 견직물로 시신을 싸서 숯과 회 점토로 밀봉한 3개의 관에 안치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왕뚜이 유적은 각종 경전의 판본 연한을 높이고 예술과 의학, 문학 등 전반적인 문화연구에 획기적인 계기를 만든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받고 있는 곳이다. 진열관에는 악기와 도자기, 전쟁도구, 그릇, 생활용기, 함, 다구, 죽통, 다양한 식품, 곡식, 사람의 유골, 동물 뼈, 약제 헝겊, 약초, 씨앗 등이 진열되어 있는데 보존상태가 매우 좋아 2,500년 전의 시대상황과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서안시대의 백마포와 마돈, 비단, 칼라풀한 꽃무늬 옷, 천문지리지, 동물그림과 문자, 지도, 정교하고도 다양한 색채의 벽화, 죽편에 쓴 글씨들을 전시하고 있어 기원전 중국문화의 수준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지하 1층에는 2,500년 전 여체의 시신이 미이라로 보존되어 있는데 옆에 안치한 관에는 여체의 모형을 복제하여 전시하고 있다. 2번째 전시관은 보통관보다 3-4배 정도 큰 관이 3개 전시되어 있는데 관의 표면에 그려진 다양한 그림의 형상을 전시실 벽면에 재현하여 그려 놓았다.

카르스트 지형이 만든 천하제일 산수 구이린(桂林.계림)

▲구이린 암봉

오후 5시 18분 박물관을 나와 구이린 행 기차에 올랐다. 창사에서 구이린까지 13시간 30분정도 소요된다. 구이린은 철도가 잘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침대차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 낡은 3등 열차이기 때문에 입석을 타면 굉장히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다행히 2층 침대차(83元)를 구할 수 있어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저녁 7시 30분쯤 잠에서 깨어보니 들녘엔 황금빛 벼이삭과 모심기를 막 끝낸 푸른 벼 잎이 노을 속에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 강원도 산골짜기와 비슷한 낯익은 계단식 논이 나타나는 풍경 너머로 어둠이 살며시 다가오고 있다. 마을의 불빛과 숲들이 어둠 속으로 희미하게 스쳐가고 있다.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깊은 잠에 빠져 눈을 뜨니 열차는 어느새 구이린에 가까이 와 있었다.

새벽 5시 38분 구이린 역에 도착했다. 역 앞에는 현대식 호텔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구이린에서 양수오(陽朔.양삭)행 6시 20분 버스를 탔다. 마을 사람들은 공원이나 빈터에 나와 아침 체조를 하고 있다. 거리는 비교적 깨끗했지만 도심을 벗어나자 낡은 아파트와 빈민촌들을 스쳐갔다. 아침 햇살 속에 특이한 암봉들이 운무 속에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침 8시 25분 양수오에 도착했다.

죽림반점(竹林飯店)에서 구리시에서 온 여대생 2명과 북경에서 유학하는 한국여대생 2명을 만나 이곳에 대한정보를 교환했다. 밤부 하우스인(BAMBOO HOUSE INN,죽림반점)은 30-100위안 정도면 깨끗한 방을 구할 수 있는데 한국인 배낭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게스트 하우스 가운데 하나다. 양수오 시지에 메이오 카페(MEIYOU CAFE)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무로 된 이 건물을 찾을 수 있다. 이 곳 외국인 거리에는 중국어를 함께 써 놓아 영어가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중국안의 외국인 촌 같은 느낌을 주는 거리다.

짐을 풀고 아침 식사로 볶음밥을 시켰는데 한국식당에서 느끼는 맛과 똑같아 모처럼 즐거운 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 하루에 두 번 하우스에서 모집하는 유람선 단체관광을 신청하였다. 구이린에서 6시간 리강을 둘러보는 유람선여행은 비용도 많이 들뿐만 아니라 물가가 비싸고 치안상태가 좋지 않아, 대개 외국인들은 구이린에서 버스로 2시간 거리인 양수오를 찾아 저렴하게 여행하는 추세다. 구이린은 관광 철이 되면 숙박이나 식사 등을 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관광객을 상대로 펼치는 그들의 상술 때문에 기분이 상할 때가 많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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