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27 >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27 >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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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눈썹처럼…신비로운 자태를 뽐내는구나
▲어메이산의 정상을 둘러싼 천지는 거대한 산맥의 파도처럼 겹겹이 에워싸여 있다. 운해 속에 잠긴 마을과 호수와 산의 모습이 한눈에 굽어보인다. ⓒ 함영덕교수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길은 도로 공사로 질퍽거렸고 끝없는 황톳길이 이어졌다. 리지앙(麗江)에서 진지앙(金江)으로 향했다. 진지앙은 판지화라고도 불리우는 사천성 도시로서 여행지로서는 볼거리가 없는 편이지만 청뚜(成都)에서 리지앙이나 따리 등을 여행하고자 할 때나 혹은 리지앙에서 그 반대 코스로 어메이산이나 러산, 청뚜 방향으로 가고자 할 때는 쿤밍을 거치지 않고 갈 수 있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이다.

시골 마을의 허름한 식당 앞에서 정차하여 식사를 하였다. 출발할 때 유스호스텔에서 만들어온 햄버거로 점심을 대신했다. 운남 지역의 사과나 복숭아 같은 과일들은 매우 작아서 예전에 우리산골 마을에서 볼 수 있었던 재래종 과일의 크기와 종자가 비슷했다.

이 코스는 도로사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도로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어 뒤뚱거리는 버스는 진흙 밭에서 기어가고 있다. 아침에 떠날 때 종욱군이 찾아와 삶은 계란 4개를 건네주었다. 짧은 만남이지만 중국의 벽지마을에서 가족처럼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종욱군의 표정에서 긴 여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흔들리는 차 칸에서 작고 검은 색을 띤 계란을 먹으면서 어린 시절 소풍이나 운동회 날을 회상해 보았다.

1년에 한번씩 맛보았던 어머니가 싸주시던 김밥에 삶은 계란 한개를 얹은 그 꿀맛 같았던 추억을 비 내리는 운남 어느 진흙탕 길 위에서 가만히 떠올려 본다. 소풍가는 날과 운동회 하는 날에 한번씩 맛보았던 그 계란과 김밥이 오늘따라 종욱군 때문에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아침을 먹지 못하고 떠난다니까 근처의 어느 가게에서 사가지고 와서 전송하는 그 따뜻한 마음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니 질척거리는 날씨마저 푸근하게 느껴졌다.

거대한 암벽 산 계곡을 진입하자 황토물로 개울이 넘치고 있다. 계단식 논들을 층층이 쌓아올린 산간 벽지마을을 지나 오후 4시쯤 사천성 접경지에서 경찰의 검문을 받았다. 성을 넘기 때문에 신분증이나 짐을 검사했다. 오후 5시 10분 진지앙(金江)시에 도착하여 시내버스를 타고 판지화로 향했다. 리지앙에서 진지앙(판지화)으로 가는 버스는 오전 오후로 두세 차례 있는데 10∼1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58元). 밤 8시 30분 어메이산 행 침대차를 끊었다(93元).

판지화 역에서 어메이역 까지는 593km, 청뚜까지는 749km, 쿤밍까지는 351km이다. 하루 종일 버스와 열차를 갈아탔다. 새벽 3시에 잠을 깼다. 이름 모를 정거장에서 잠시 정차하다 다시 출발하며 사라지는 역사의 가로등 불빛들이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무슨 인연법으로 인해 이 벽지까지 먼 길을 떠나와야 하는가. 치열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슬프고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의 거친 숨소리처럼 그렇게 달려가고 있다.

아침 8시 5분 어메이역에 도착했다. 24시간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서 그런지 온몸이 솜처럼 나른하다. 아직도 음식이 맞지않아 죽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빠오궈쓰(報國寺)행 버스를 탔다. 울창한 계곡 길을 접어들어 10여분 달리면 완니엔쓰(萬年寺)를 지나게 된다. 여름철인데도 계곡의 물은 조금씩 흐르고 있다. 암벽들이 검은 색을 많이 띠어 생각보다는 물이 맑은 편은 아니다. 가끔씩 나타나는 작은 마을들과 상점들이 눈에 뜨인다. 40여분 달려 어메이산 매표소 입구에 도착했다. 주변 일대는 고원지대로 상가와 음식점, 여관이 몇 채 있다.

해발 1320m의 매표소를 지나 버스를 타고 2540m의 접인전 까지 간 후에 이곳에서 케이블카를 갈아탔다(상행 40元,하행 30元). 어메이산을 둘러보는 방법은 걷는 것과 차편과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걸어서 종주하는 방법은 대부분 보국사에서 출발하여 푸후쓰(伏虎寺)와 청음각, 만년사, 세상지 등을 경유하여 정상(金頂)을 오른 후 선봉사를 경유하여 하산하는 코스를 선택하는데 이는 산사에서 1박을 해야 하는 2일 정도 소요되는 코스다.

어메이산 탐방은 중학교 시절 보았던 무협지의 ‘아미파’라는 중국정통 8대 명문 무술문파에 대한 인식이 각인 되어있었기 때문에 한번쯤 둘러보고 싶었다. 아마도 그런 인연이 아니었더라면 지나쳤을 것이다. 아미파는 중원에서 어떤 위치에 있으며, 아미산은 어떤 산세와 경관 속에서 유지되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산정 주변의 3,000m 이상의 깎아지른 암벽산 지대에 금정대주점(金頂大酒店)이 자리 잡고 있다. 어메이산의 정상을 둘러싼 천지는 거대한 산맥의 파도처럼 겹겹이 에워싸여 있다.

운해 속에 잠긴 마을과 호수와 산의 모습이 한눈에 굽어보인다. 맑은 날씨와 투명한 햇살 덕분에 어메이산 주변 전경을 뚜렷하게 볼 수 있어 하늘에 감사했다. 이곳의 날씨는 변화가 심해 예측하기가 어려우며 운이 따르지 않으면 일출과 일몰을 보기가 거의 어려울 정도다. 산행하는 사람들은 세상지와 뇌동평 지역에 출몰하는 원숭이들이 배낭을 찢거나 소지품을 낚아채는 경우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주변의 전경을 돌아보고 3077m에 위치한 진팅(金頂)으로 향했다. 입구에는 또 다시 매표소가 있어 입장료를 받았다. 어메이산 입장료 80元, 상행선 케이블카비 40元을 내고 산정 입구에서 또 10元을 내라니 짜증이 났다. 이 산정까지 왔으니 다시 한번 입장료를 내고서라도 정상에 올라가 구경을 하라는 식이니 기분이 몹시 상할 수밖에 없다.

돈을 떠나서 중국인들은 관광지 요금이나 서비스 정신이 무엇인지 개념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았다. 소득수준에 비해 비싼 입장료를 받고도 마굿간 같은 측간(화장실)에서조차 비용을 따로 내야 하는 곳이 중국이다. 대체로 우리나라 입장료보다 비싼 편이다. 그래도 관광지마다 사람들로 넘치는 것을 보면 인구가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가는 곳마다 돈돈이다. 중국인들은 참으로 돈을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여행을 통해 절감할 수 있었다. 중국의 화교들이 동남아의 상권을 장악한 것도 돈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안휘성의 구화산과 절강성의 보타산, 산서성의 오대산과 더불어 중국불교 4대 명산의 하나인 어메이산은 중국인들의 정신적 고향이다. 청뚜로부터 160km 떨어져 있으며, 최고봉은 3,099m의 완포팅(萬佛頂)이다. 유년시절 밤을 새워 읽었던 소림, 무당파와 더불어 등장하던 아미파의 어메이산을 오르니 감회가 깊었다. 진팅엔 유리로 안치된 보살상에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예불을 올리고 있다.

3000m 이상의 깎아지른 암벽산 위에 커다란 사찰을 짓고 불심을 염원하는 중국인들의 구도정신을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기대보다는 이곳이 상업성에 물들어 있고 높은 위치 이외에는 마음을 편안하게 감싸 줄 그 어떤 구도의 열정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어메이산을 오르고 나서야 우리나라 오대산이 참으로 보기 드문 천하의 명당이라는 사실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월정사를 지나며 흐르는 맑고 청아한 계곡의 물소리와 아름답고 단단한 바위들을 어메이산 계곡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계곡은 메말라 있으며, 검은 암벽사이를 흐르는 물은 투명함을 잃고 힘없이 흐르고 있다. 주변의 기운을 다 감싸고 포용하는 듯한 오대산 적멸보궁의 온후한 정기를 이곳에서는 느낄 수가 없다. 깎아지른 암벽 산 정상에서 굽어보는 어메이산 전경은 강원도 월정사의 오대산을 생각나게 한다. 온 산 주변을 끌어안 듯 파노라마처럼 다가와 가슴에 안기는 산맥들을 감싸 앉는 오대산 비로봉의 넉넉한 품성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24시간을 달려와 본 어메이산은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다소의 실망스러움이 앞선다. 이곳에는 동진 때 만들어 진 완니엔쓰(萬年寺)가 있다. 어메이산을 대표할 수 있는 사찰로 980년에 제작된 높이 6.84m, 무게 62톤의 청동상으로 제작된 흰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상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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