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세상
- 황동규 -
그래도 열 손가락으로 헷갈리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 세다 세상 뜬다는 것
얼마나 자지러진 휘모리인가.
갓 뜬 노랑 은행잎이 사람과 차(車)에 밟히기 전
바람 속 어디론가 뵈지 않는 곳으로 간다는 것!
갑자기 환해진 가을 하늘
철근들 비죽비죽 구부정하게 서 있는
정신의 신경과 신경 사이로 온통 들이비쳐
잠시 아무것도 부끄럽지 않고
길 건너려다 말고
벗은 몸처럼 서 있어도 홀가분할 때,
땅에 닿으려다 문득 노랑나비로 날아올라
막 헤어진 가지를 되붙들까 머뭇대다
머뭇대다 손 털고 날아가는
저 환한 휘모리, 저 노래!
*가을날, 노란 은행잎이 뚝 지는 거리에 서고 보면 쓸쓸한 마음도 환해진다. 노랑나비로 날아올라 사라지는 은행잎처럼 우리네 생도 저리 아름답게 산화될 수 있다면, 욕망도 기원도 없이 오롯한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낙화, 얼마나 신명나는 가락이련가. 이 얼마나 환한 오선지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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