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비오는 날
  • 심억수 <시인>
  • 승인 2011.08.09 1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하루 종일 폭우가 내립니다. 그래도 청주 도심의 젖줄 무심천은 무섭게 내리는 비를 모두 받아들이며 흘러갑니다. 흐르는 게 어디 무심천뿐이랴. 시간의 흔적들은 소리 없이 깊어 갑니다. 무심천 그득하게 흐르는 물줄기는 자신의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활기찬 몸짓 같습니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몸짓으로 흐르는 무심천을 바라보며 잠시 나를 돌아봅니다.

기암괴석의 틈새로 생명을 내린 풀과 나무들이 무성했던 목도 강가에서 자란 나는 물고기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꿈도 키웠습니다. 나는 보는 이가 없어도 한밤에 꽃피우는 달맞이꽃을 좋아했습니다. 달맞이꽃처럼 나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외로워하거나 슬퍼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여름 태양처럼 뜨거운 열정은 식어 버렸고 색깔마저 흐려져 형체도 알 수 없는 세월에 물들었습니다. 숨겨진 욕망의 파도는 거센 물살을 일으키며 처참히 부서져 버렸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존재의 미련과 아집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관점과 가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집착과 욕심에 사로잡혀 혼자만의 생각에 괴로워하면서 말입니다. 나만 손해 보는 것 같고 나만 소외되는 것 같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미움으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미움들을 털어 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편협한 마음 가득 미움만 쌓여 갑니다. 폭우가 휩쓸고 간 자리처럼 마음에 상처만 깊어졌습니다.

폭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흐르는 무심천을 바라보며 비오는 날의 짧은 생각을 시로 적어봅니다.

당신은 나의 하늘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늘 나에게 푸른 하늘로 다가와

희망만을 주지 않습니다.

뭉게구름 만들어 꿈만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아름다운 노을빛으로

감동만을 주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보석처럼 빛나는 별빛으로

사랑노래만 하는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때로는 잔뜩 찌푸림으로

나를 불안하게 하기도 하고

천둥번개로 두려움에

떨게도 합니다.

어느 날엔

걷잡을 수 없는 소나기로

나를 흠뻑 적시게 하고

억수장마로

나의 모든 것을 삼켜 버려

절망하게도 하지만

나는 묵묵히 당신을

신앙처럼 우러러 봅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밝은 태양으로 빛나는 그날을

그대의 빛으로

나의 존재가 늘 푸르기를

비오는 날에는...

자연에 순응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생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 가는 것처럼 많은 계절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때로는 남을 아프게도 했고 다른 사람들 때문에 많이 아파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생각하니 나를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가지려 한 집착과 욕심 탓이었습니다. 매사에 경계를 하며 아집 속에 살아온 세월이 부끄럽습니다. 돌아보면 모두를 손에 쥐려는 욕심 때문에 좋은 인연도 악연으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심천이 흘러가듯 모든 것은 흘러가는 것입니다. 더 이상 지나간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집착과 욕심을 어느 한쪽이 놓지 않으면 바람 불고 비가 내리는 마음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흘러간다는 것은 내 것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급류처럼 지나온 인생. 가끔은 하늘을 보는 여유를 가져야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