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요금받아 1000억 날렸나
휴대폰 요금받아 1000억 날렸나
  • 이재경 부국장<천안>
  • 승인 2011.05.0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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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1. 회장님 얼굴에 망신살이 폈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동남아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 주말 김포 공항은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다른 때 같으면 출장 성과 발표 등 의젓한 모습으로 TV에 비쳤을 그의 모습은 이날만큼은 아니었다. 짧은 인터뷰만 하고 부랴부랴 공항을 떠났다.

그의 출장 도중 밝혀진 선물 투자 손실 뉴스를 의식해서다. 취재진이 사실이냐고 추궁하자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면서 시인했다. 투자한 돈이 회사 공금이 아니냐는 질문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이라며 부인했다.

최태원 회장이 최근 선물 투자로 1000억원의 손실을 본 사실이 밝혀지면서 SK그룹이 좌불안석이다. 겉으로는 태연한 듯하지만, 동반 성장을 무기로 대기업에 압박을 가하는 정부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터진 돌발 악재이기 때문이다.

선물 투자는 주식이나 원자재, 외환 등을 미래의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가격으로 사고팔기로 약속하는 거래로 크게 돈을 벌거나 손해를 볼 수 있어 투기성이 강하며, 사실상 도박이나 다름이 없다. 이러한 투기를 더구나 국내 대표적인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는 재벌 그룹의 총수가 했다.

언론 일각에서는 최 회장이 선물 투자를 한 배경을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고육책으로 미화하려고 하고 있다. 그룹 지주회사인 SK의 지분을 늘리려고 '선의'의 투자를 했다는 얘긴데 이건 아닌가 싶다. 회사 지분 늘리려고 노름판에 '선수'로 나가 화투패 잡았다는 건데 누구 이해해 줄 사람 있을까.

2. SK그룹은 모태가 섬유회사다. 선경직물로 돛을 올린 SK는 60년대 섬유업이 호황기를 맞으면서 돈을 벌다가 1980년에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했다. 모든 재벌이 침을 흘리며 노렸던 정부의 독과점 공기업 인수에 성공한 것이다. 뒤에 유공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게 지금 그룹 3대 주력사 중 하나인 SK이노베이션(합병 전 SK에너지)이다.

이때가 SK그룹의 1차 도약기다. 이후 SK는 또다시 재계의 질시를 한 몸에 받으며 제2도약의 전기를 마련한다. 1994년 차세대 황금알 거위로 인수전이 치열했던 한국이동통신을 품에 안았다. 지금의 SK텔레콤이다. 두 번 다 인수전이 치열했었고 말이 많았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건 창업주와 최종현 2대 회장과 각각 사돈관계를 맺었고 이 후광이 작용했다는 의혹도 일었다.

SK이노베이션이 1/4분기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무려 전분기의 4배에 달하는 1조1900억원이다. SK텔레콤도 같은 기간 5000억원을 벌어들였다. 기름 팔고, 통신비 받아 번 돈이다. 이러면서 총수는 무슨 영문인지 투전판에 뛰어들었다.

그래놓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이라며 입을 다물고 있다. 개인 재산(최 회장은 최근 5년간 주식 배당과 지분 처분으로 1800억원을 벌었다고 한다)이니 더 왈가왈부하지 말라고 했는데 과연 그냥 넘어가도 될까. 독과점 기업을 운영하면서 얻은 천문학적인 돈을 공인인 재벌 총수가 노름으로 1000억원이나 잃었다 이걸 왜 시비냐고?

치솟는 기름값, 안 쓰려야 안 쓸 수 없는 통신비, 연간 1000만원에 육박한 대학 등록금 시대를 살며 허리가 휘어지는 서민들. 그 옆 다른 세상에서-기름값, 휴대폰 요금 받아 번 돈을 주체못해 노름판에 펑펑 날리며 사는-'무한 탐욕'의 재벌 회장님. 당장 우리 눈앞에 펼쳐진 자화상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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