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교과서 비리, 내 탓 아니라는 교과부
검정교과서 비리, 내 탓 아니라는 교과부
  • 이재경 부국장<천안>
  • 승인 2011.04.19 21: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검찰이 모처럼 한 건 했다. 황당하기만 한 초중고 교과서 비리다. 학생들 교과서 가격에 룸살롱 술값과 접대비가 포함돼 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검찰에 따르면, 한국검정교과서 직원 4명은 최근 6년간 인쇄업체 등에서 사례비 등 명목으로 15억원을 받아 챙겼다. 인쇄업체와 전자교과서 납품업체에 매출액의 20~40%를 사례비로 요구했다. 인쇄용지와 파지를 빼돌려 8억여원을 챙겼다. 거래처 65곳이 이 사건에 연루됐다.

이들은 돈을 차명계좌에 공동관리하면서 유흥비나 개인 주식투자 등에 썼다. 서울 강남의 단골 룸살롱에서 쓴 돈만 3년간 4억원에 달했다. 돈만 갈취한 것도 모자라 업자들에게 해외여행 경비까지 대납시켰다.

이 돈은 고스란히 학생들의 교과서 값에 포함됐고 학부모들의 부담으로 전가됐다.

이번 교과서 파동은 전적으로 교육과학기술부의 책임이다. 검찰 수사 발표 후 "교과서 제작은 검정협회에 위임했다. 협회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변명한 교과부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두 해 전인가 서울의 한 초대형 서점에 도난되는 서적이 연간 7만여 권에 이른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책값이 전체 매출의 0.6%를 차지한다고 했다. 1만 원씩만 따져도 7억여 원어치나 된다.

계층에 따라 훔치는 책의 종류가 갈렸다. 중고생은 주로 참고서나 문제집이 많았고, 대학생들은 사전, 전공서적이 주를 이뤘다. 미수에 그친 이들을 붙잡고 보면 지갑에 책을 사고도 남을 돈을 갖고 있거나, 부유층 자제들이 많았다. 정말 어려워서, 책을 살 돈이 없어서 훔친 이들도 있었다. 고마운 건 서점들이 붙잡힌 이들을 무조건 범죄자로 몰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서점들이 습관성 '악질'이 아닌 경우 책을 돌려받고 상습범인 경우 그동안 분실된 책을 변상해 주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옛말을 지켜준 셈이다.

우리나라 대학생의 태반이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범죄자가 될 처지에 놓였다. 많은 대학생이 전공 서적 구입비용 부담 때문에 책의 원본을 복사한 복제본으로 공부하고 있다. 학생들은 학기당 20만~30만원의 부담이 추가되는 책 구입비를 줄이려고 중고책방을 찾거나 복제본을 구입한다. 저작권자들이 이를 막으려고 검경과 단속을 벌이니 업자들은 학교 앞 복사가게가 아닌 개인 주택을 '공장'으로 만들어 단속을 피한다. 그러나 만약 강의실을 덮쳐서 복제된 책으로 공부하는 학생에게 죄를 묻는다면 꼼짝없이 범죄자로 몰리게 될 상황이다.

이번 검정교과서 비리가 터지면서 학부모들은 그동안 책값의 20% 이상을 추가로 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 이 부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살인적인 등록금에다 매년 50만원 안팎의 책값 부담까지 져야 하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검정교과서 파문을 '우린 모르는 일'이라고 한 교과부에 뭘 기대하느냐마는, 재단의 법정 부담금 납부엔 인색하면서 등록금만 인상해 모든 걸 해결하려는 대학을 이젠 더 용납해선 안 된다. 학교 도서관에 기껏 학과별 전공 서적 1권만 갖다 놓고 이를 돌려보라는 대학들. 어떤 대학 도서관은 아예 교수들이 구입을 권유한 책마저 없는 곳도 있다.

초중고 교과서 값에 룸살롱 접대비를 포함시킨 교과부, 등록금 1000만원 시대를 당연하다는 듯 방관 중인 교과부. 이젠 복제본으로 공부하는 대학생들을 저작권 범법자로 만들 셈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