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분의 연 향기 있는 비구상
심재분의 연 향기 있는 비구상
  • 정인영 <정인영사진연구소 대표>
  • 승인 2011.04.1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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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정인영 <정인영사진연구소 대표>

"아침이슬 받아 반짝이는 이슬. 연잎에 가려 보일 듯 말듯한 연봉. 활짝핀 넉넉한 자태. 연꽃에 대한 내 일반적인 사랑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아직 난 그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보지 못했기에."

여류 사진가 심재분이 연을 주제로 한 사진으로 필림의 아날로그적 발상을 펼쳐냈다.

그는 지난 12년의 세월 동안 연못 안의 한정된 공간에서 떠오르는 햇빛을 받으면서 피었다가, 해질녘이면 그 청조한 얼굴을 감추고마는 오묘한 연꽃과 그들의 식구들을 카메라 안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가 의미있는 사진들만을 보여주었다.

연꽃은 불가에서 높이 우러르는 존숭의 대접을 받고 있다. 또 명예, 행운, 군자의 상징으로는 물론 건강, 장수, 불사의 정신을 지닌, 어떤 무엇보다도 고귀한 화품을 자랑한다.

연꽃은 또 더러운 연못에서 깨끗한 꽃을 피운다 하여 예부터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속세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품성을 지녔다 해서 극락을 말하고 아미타불 정토에 왕생하는 인간의 모습을 띠고 있다고 했다.

심재분은 이렇게 해와 물, 그리고 연꽃의 필연적인 관계를 그만의 독창적인 작업으로 지금까지의 연꽃 사진들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뛰어난 지식을 발휘했다.

그것은 이번에 전시된 사진 각각의 뜻과 의미에 따라 저마다의 새로운 시각을 내놓았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먼저 '원초적 순수'이다. 넓은 연잎모서리로 아주 자그마하게 내민 꽃봉오리를 보니 티없이 자란 소녀의 수줍음과 자신을 내보이기가 상당히 망서려짐을 보았다.

'존재의 그림자'에선 사진가는 있는 그대로의 연꽃을 찍어 짙고 연한 꽃색의 분이 고르고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니 서호의 유월이 한결같다 했는데, 실제로 어디 한 군데 다듬지 않으면서도 활짝 열어젖힌 때묻지 않은 상체로 잘 보여주었다.

심재분의 연꽃 작업은 다시 '혼돈과 타락'에 이은 초췌한 모습의 형상으로 이어졌다. 그 맑은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면서 기약없는 집착과 아집에 휩싸인 채 어제의 고아한 자태는 사라지고 대책없는 상황에서 만난 끝없는 생의 외골목을 말해 주었다. 하나, 그렇게 허망할 줄 알았던 연꽃은 이내 '순수의 정화'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승화한다.

이렇게 살아 생전의 희로애락을 뒤돌아보는 것으로 작별하는 연은 이제 깊은 심연의 늪에 잠겨 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문을 닫았다.

심재분은 이번 '연의 세계'를 한낱 아름다운 꽃의 자태를 보여주는 것에서 과감히 탈피한다. 추상과 반추상으로 시작한 자신만의 독립성을 촬영과 셀렉트, 그리고 인화에 세심한 고민과 창작의 정신을 동원, 완성한 것을 충분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관련 서적이건 아니건 수도 없이 읽고 많은 사진과 미술 전시장을 찾아 연구하고 기획한 끝에 다소나마 연꽃 본래의 세상을 터득하고 그것을 다시 필름에 옮겨 담았아요."

그는 자신의 연 사진 작업 후에 이루어진 이번 작품이 내일을 기다리는 내실있는 한 페이지로서 긴 고통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한 것에 아주 조금의 위안을 삼는다고 말했다.

심재분은 이 세 번째 사진전으로 그동안의 연 작품 행진은 모두 마쳤다고 한다. 함께 출간한 사진집으로 일단 대단원의 점을 찍었다. 그의 다음 사진작업을 언제 또 보게 될지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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