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딜레마, 경제정의 구현 외면 탓
유류세 딜레마, 경제정의 구현 외면 탓
  • 이재경 부국장<천안>
  • 승인 2011.04.10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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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1. 의약품 리베이트 관행에 대해 정부가 고강도의 칼을 빼들었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었지만 이젠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인 것 같다. 제약회사, 병원, 의사, 약국 등 4개의 고리로 연결되는 의약품 리베이트 커넥션과 그 행태는 일반인이 상상도 못할 정도다.

어떤 의사는 특정 제약사의 약을 처방해 주는 대가로 자녀 유학비까지 지원받았다. 의사들의 회식은 물론 개인적인 술자리는 다반사고 아무 때나 쓰라고 뒷돈까지 대줬다. 병원과 약국도 제약사의 신약이 나올 때면 예외 없이 성공적 정착을 위한 이른바 '랜딩' 비용을 리베이트로 받았다.

자기네끼리 이뤄지는 거니 일반 소비자들이 뭔 상관이겠느냐고 의문을 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천만부당한 생각이다.

일단 약값이 올라간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제약 시장 규모는 12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중 2조5000억원가량이 제약사에서 의사나 약국의 뒷주머니로 흘러들어 간다. 이 돈을 소비자들이 부담해 왔다.

제약사들은 신약 설명회나 광고비 등의 정상적인 판촉비 범주를 벗어나 의사, 약사들에게 우리 약 써 달라고 돈을 뿌려댔다. 많은 의사들이 환자들을 생각해서가 아니고, 제약사 로비에 넘어가 약의 좋고 나쁨을 떠나 특정 약을 처방전에 올렸다.

2. 8일 김황식 총리가 국회에서 "유류세 인하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내락없이는 못할 말 같은데 내리긴 내릴 모양이다.

못마땅한 건 지금까지 보여준 정부의 태도다. 관료들은 책상머리에 앉아 '유류세 인하=세수 감소와 재정 부담'을 외쳐왔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 국제 원유가 인상 덕분에 원유 수입에 매겨지는 세금으로 약 4조원을 더 걷어 들일 수 있다. 소비자 가격과 연동해 오르는 유류세(지난해 20조원 추산)도 최소 1조원을 더 걷을 전망이다.

이런데도 국민에겐 계속 말장난이다. 유류세 10%를 인하하면 휘발유 값을 1ℓ당 75원을 내릴 수 있다. 이 경우 정부는 세수가 2조원 줄어든다고 말한다. 그런데 더 걷게되는 5조원은 계산하지 않고 있다. 유가를 내리면 기름 과소비가 우려된다는 변명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휘발유 값을 지금보다 10% 내려도 ℓ당 1800원인데 이게 싸다고 과소비할 국민은 강남 부자, 재벌이면 모를까 거의 없다.

세제 정비도 시급하다. 손쉽게 걷을 수 있다고 정부는 그동안 유류세를 걷으면서 서민들의 부담을 외면했다. 기름값에 붙는 교육세가 대표적인데 이건 부자나 서민이나 똑같이 내야 한다. 팔면 100만원도 못 받는 1톤 중고 트럭을 몰고 새벽 청과시장을 누비는 사람이나 1억원짜리 외제차로 골프장 가는 사람에게 똑같이 징수했다.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그 원인이 뭔지 아는데도 수수방관했다. 앞서 말한 제약사의 리베이트 관행만 없애도 약값을 20%나 인하할 수 있다. 의약품 리베이트는 고스란히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이어지고, 국민에게 전가된다. 리베이트 규모가 연간 2조5000억원이라는데, 이는 유류세를 10% 인하하는 데 따른 정부 손실분과 맞먹는다. 이런 물가상승과 직결되는 사회적 반질서를 그동안 방치해 왔다. 재벌이나, 사(士)자가 들어가는 고소득 직업군의 세금 탈루도 제대로 감시하지 않았다. 이래저래 나라 곳간을 튼실하게 채울 의무를 다하지 않은 셈이다.

경제 정의 구현. 이걸 외면해 온 탓에 정부가 지금의 유류세 딜레마로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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