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남궁병원 터에서 발굴된 유물의 의미
옛 남궁병원 터에서 발굴된 유물의 의미
  • 연지민 <교육문화부장>
  • 승인 2011.04.03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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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연지민 <교육문화부장>

지난달 30일, 청주 시내 한복판에서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를 증명하는 다량의 유물이 출토됐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기와와 청주읍성의 성곽이 하수도로 사용된 흔적, 그리고 우물 등이 어두운 지하에서 벗어나 모습을 드러냈다.

유물이 출토된 자리는 옛 남궁병원이 있던 자리다. 최근 신축건물 건립을 위해 지표에 대한 시굴조사가 실시되면서 유물이 발굴됐다.

이번 출토된 유물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지리적으로, 옛 남궁병원은 청주 시내 한복판이자, 청주읍성 성벽이 있던 자리의 바로 안쪽이란 점이다. 조선시대 청주목의 행정구역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의미가 컸던 이곳에서 유물이 출토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란 생각이다.

누적된 역사처럼 현장에는 100년 전 일본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면서 하수로정비사업으로 사용된 성돌이 오랜 시간을 품고 역사를 증명하고 있었다. 또 지하에서 쏟아져나온 기와들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 청주를 통일신라시대로 옮겨 놓았다.

그중 통일신라시대 기와로 추측되는 '대중 3년' 기와는 849년에 제작되었음을 확인케 했으며, 이는 흥덕사지에서 출토된 기와와 같아 9세기 청주역사 증명에 고무적인 일로 기록되고 있다. 또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막새기와는 통일신라시대 행정구역이었던 서원경의 위치도 가늠할 수 있는 자료로, 옛 남궁병원 인근에 서원경성이 건립되었을 가능성에 논의의 무게를 얻게 됐다.

이처럼 옛 남궁병원 터에서 진행된 시굴조사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천년의 청주 역사를 조명하는 귀중한 유물을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옛 남궁병원 터에는 신축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모처럼 햇볕에 드러난 지하 땅속도 금싸라기 경제 논리에 묻혀 대형건물이 들어설 것이 불보듯 뻔하다. 이번 시굴조사로 '얻을 건 다 얻었다'는 노병식 충북문화재연구원의 말에 위안을 삼아보지만, 보존 여부조차 꺼낼 수 없는 현장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옛 남궁병원 자리에 이어 중앙공원 옆 우리은행 자리도 신축 건물 건립을 추진하며 시굴조사가 예정돼 있다. 옛 남궁병원 터와 역사선상에서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곳에선 또 어떤 유물이 출토될지 역사학자나 시민들이나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청주의 노른자 땅이 품고 있는 역사의 현장에 대한 호기심은 단순히 유물 차원만은 아니다. 풀리지 않은 역사의 수수께끼는 청주사람들의 역사적 정체성도 확연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청주시내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서 청주읍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역사 유물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산발적으로 제기됐던 청주읍성 복원 주장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된다.

다행인지 몰라도 청주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심이었던 청주 성안길 주변에는 아직도 옛 고가들이 남아 있다.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잔존이 조심스레 점쳐지는 것도 고가 자리에 묻혀 있을 유물 출토의 가능성 때문이다.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면서도 청주의 역사성을 찾아가는 문화보존정책이 필요하다. 한번 묻힌 역사가 다시 땅 위로 드러나려면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될 것은 분명하다. 개발에 밀려 역사를 덮어버리는 식이 아니라, 철저한 조사와 연구, 보존하는 차원의 문화재 발굴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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