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사회 구현 약속이 미덥지 않은 이유
신뢰사회 구현 약속이 미덥지 않은 이유
  • 이재경 <부국장 천안>
  • 승인 2011.03.3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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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 천안>

결국, 신공항은 물 건너 갔다. 둘 다 부적합하다는 명쾌()한 논리로 싹을 잘라버렸다. TK와 PK가 각각 밀었던 밀양과 가덕도는 적합성 평가에서 모두 기준 이하의 점수를 받았다. 점수로 치자면 공부를 아예 하지 않은 낙제생 수준이다.

두 곳 모두 평가 기준선인 50점(100점 만점)을 넘지 못했는데, 각각 39.9점과 38.3점에 그쳤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가장 중시하는 경제성 부문에 대한 평가에서도 두 곳은 40점 만점에 12점대를 받았다. 30점 배점인 사회환경분야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서로 우리가 적합지라고 날 서게 대립했던 대구 경북 쪽 사람들과 부산 쪽 사람들의 어안이 벙벙하게 하는 평가 결과였다. 말문이 막히기는 이해 당사자가 아닌 일반 국민도 마찬가지다.

대학 영문과에 가려던 수험생이 영어의 ABC도 모르고 지원서를 냈다가 서류 심사에서 망신을 당한 꼴이다.

박창호 신공항 입지평가위원장은 "평가는 미리 백지화를 염두에 두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점수가 되면 둘 중에 하나 고르려 했는데 '엄정한' 평가 결과,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는 얘기다. 이게 사실이라면 너무 허탈하다. 전직 대통령에서부터 현 대통령까지 만 4년 6개월을 끌어온 정부의 대국민 약속 사업 아니던가.

동남권 신공항은 2003년부터 거론됐다. 당시 당선자 신분이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지역 상공인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건의를 받고 긍정적인 검토를 약속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2007년 국토연구원이 검토 용역에 나섰으며, 건교부는 1단계 용역 결과 '적극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2008년 2월 취임 이전부터 신공항 건설 공약을 내걸었다. 후보 시절 대구지역 기자간담회에서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약속했다. 취임 직후 3월 국토연구원이 2차 용역에 착수했다. 1년 9개월이 지난 후 용역결과가 나왔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기준인 비용대비 편익비율(B/C)이 두 곳 다 모두 0.7점대로 나왔다. 1.0 이상을 받아야 할 경제성 평가에서 이미 미달하는 낙제점을 받은 셈이다.

웃기는 건 이렇게 불가 결론이 난 신공항이 이 대통령 취임 후 정부가 선정한 30대 국책 선도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는 점이다. 2008년 9월인데 당시 정부는 대통령이 주재한 제2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새만금 개발, 세종시, 호남고속철도 등과 함께 신공항 건설을 선정했다.

강원, 제주를 2곳의 특화단지로 묶고, 나머지 국토를 5개 경제권으로 나눠 국토 균형발전을 꾀하기 위한 이른바 5+2 광역경제권별 활성화 전략을 수립한 것인데 그 프로젝트에 신공항 건설이 포함돼 있었다.

그게 4년여를 질질 끌다가 백지화됐다. 상실감에 분노한 영남권은 대통령과 정부 규탄의 성토장으로 민심이 들끓고 있다. 엄용수 밀양시장이 전격 사퇴를 선언했고, 부산시장은 독자적인 신공항 건설에 나서겠다고 했다.

안상수 대표가 엊그제 KBS 라디오 정책 연설 방송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와 한나라당은 유언비어가 발붙일 수 없는 '신뢰 사회'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앞장서겠다." 그러면서 '신뢰'는 우리의 소중한 '사회적 자본'이라고 그 의미까지 강조했다.

세종시, 과학벨트에 이어 신공항까지 대통령과 집권당의 공약이 대수롭지 않게 뒤집혀 지는 마당인데 안 대표의 이런 말에 진정성을 부여해도 좋을까. 충청권에 이어 분노한 영남권 민심이 어떻게 튈지 한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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