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희와 홍명희 문학제
홍명희와 홍명희 문학제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0.10.26 2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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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연지민 교육문화부장

벽초 홍명희를 둘러싼 논쟁이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분단의 역사와 남북의 이념 대립이 홍명희란 인물을 통해 아직도 우리 사회 안에서 진행 중에 있다. 아물었는가 하면 툭 불거져나오는 기억처럼 홍명희는 분단 이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임꺽정의 작가로 알려진 홍명희는 괴산 출신이지만 월북작가로 남한에선 이름조차 금기시 되었던 작가였다. 그런 그가 1988년 월북작가에 대한 해금조치로 한국 문학사에 재등장했다. 장편 역사소설가로, 팔도 방언이 그대로 녹아나 있는 작품으로 근대작가로 조명받고 있지만 전쟁 60년이 지난 지금도 걸러내지 못한 이념의 지꺼기처럼 논란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다른 월북작가들과 달리 유독 홍명희에게만 쏟아지는 비난은 왜일까 순국열사 홍범식 선생의 아들로,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그였지만 말년에 북한에서 보낸 행적 때문이다. 1948년 북한 부총리에 선출되었고, 1968년까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그의 이력은 6.25전쟁 세대에겐 쉽게 묻고 넘어갈 수 없는 상처이기 때문이다. 작가 홍명희 이전에 북한 부총리 홍명희의 기억은 고스란히 홍명희 문학제로 옮겨와 불씨가 되고 있는 것이다.

충북작가들에 의해 조명되기 시작한 작가 홍명희는 문학제를 개최하는 동안에도 그의 고향에선 늘 외면받는 작가였다. 고향사람들에게 그는 덥석 끌어안고 가기엔 뜨거운 감자인가 보다. 지난해 홍명희 문학제가 그랬다. 괴산군지자체가 문학제를 지원하려다 괴산군 보수단체의 반발로 문학제 무산 위기까지 몰렸다. 가까스로 취지를 살려 청주에서 문학제를 개최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렇게 꼭 1년이 지난 지금, 홍명희에 대한 인식은 변하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북한 내부에서 권력 서열에 변화가 일면서 홍명희에 대한 논란이 다시 점화되는 양상이다. 이유는 그의 손자 홍석형이 지난 9월 말 북한 내 핵심 권력자로 급부상하자, 고향에서 홍명희의 이력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이는 30일 홍명희 문학제를 앞두고 괴산군 보훈단체와 문학단체와의 미묘한 기류가 일찌감치 감지되었다.

보수단체에선 홍명희 문학제를 하더라도 공과 사를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역사적 평가 없이는 작가 홍명희에 대해서도 인정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홍명희·홍석형에 대해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고 홍명희 문학제를 개최할 경우 마치 홍명희의 행적도 인정하게 되는 것을 우려한 탓이다. 또 이에 대한 평가가 없다면 문학제에 대한 단체행동도 예고되고 있어 현장에서 충돌이 예상되기도 한다.

이에 반해 문학단체에선 이념을 뛰어넘어 통일문학을 상징할 수 있는 작가 홍명희를 조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민족문학을 추구해온 작가정신을 기리는 것 또한 민족문학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양측의 입장과 상관 없이 홍명희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지역민들에겐 안타까운 일이다. 작가 홍명희든, 인간 홍명희든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겐 시대적 상처가 단단하게 응어리져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개인의 역사와 국가의 역사가 질긴 고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홍명희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명희 문학제를 괴산 사람들의, 나아가 우리 민족의 한恨을 풀어내는 장으로 삼았으면 한다. 홍명희를 통해 민족문학도 꽃피우고, 민족정신으로 봉합하는, 문학으로 화합을 이루는 문학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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