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부침주(破釜沈舟)
파부침주(破釜沈舟)
  • 남경훈 기자
  • 승인 2010.06.23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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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경훈 편집부국장

'파부침주(破釜沈舟)'은 진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항우가 쥐루(鉅鹿) 싸움에서, 출진(出陣)에 즈음해 타고 온 배를 가라앉히고 사용하던 솥을 깨뜨렸다는 고사에서 출발하고 있다.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 각오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23일 새벽 월드컵 출전 사상 처음으로 원정 16강 진출의 꿈을 이뤄낸 남아공 더반에서 날아든 낭보는 이런 파부침주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에 이어 다시 한국 축구사에 찬란한 금자탑을 쌓아 올린 쾌거다.

한국과 나이지리아전이 벌어진 90분간의 격전이 긴 휘슬과 함께 종료되면서 2대2 무승부로 한국의 16강 진출이 결정된 순간 서로 얼싸안은 채 울부짖는 한국선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허정무 감독과 벤치를 지키던 선수들이 운동장으로 뛰어 들었다. 같은 시간 잠을 설치며 거리에서, 집안 TV앞에서 숨죽이고 지켜보던 국민들도 하나가 되어 환호했다. 경기침체와 천안함, 세종시 논란 등으로 우울하고 지쳐있던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주면서 한국축구는 그렇게 '새벽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처음 얼굴을 내민 한국의 월드컵 본선 도전사는 눈물과 한숨으로 점철된 한 편의 서사시였다. 한국은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6차례(2002년 한·일 월드컵 제외) 본선 원정길에 올랐으나 한 번도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1승 5무 11패의 초라한 전적이 전부였다. 한국 축구가 강해진 것은 무엇보다 성공적인 세대교체에 기인한다.

여기에 선수들의 강한 정신력이 대표팀을 강하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1-4의 참패를 딛고 일어섰으며, 나이지리아에 선취골을 내주고도 동점골로 따라잡는 불퇴전의 정신력을 발휘했다.

우리 선수들은 상대 선수들보다 한 발짝 더 많이, 그리고 더 빠르게 뛰며 16강 진출을 결정지었다. 이청용이 나이지리아전 양팀을 통틀어 가장 많은 11km 417m를 뛰었고, 산소탱크 박지성이 11km 64m로 뒤를 받쳤다. 다리에 쥐가 나 교체된 기성용은 교체 전까지 10km 500m를 달리며 공수를 넘나들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11km 이상 뛴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타고난 체격 조건과 유연성을 앞세운 나이지리아의 개인기에 맞서 우리 태극전사들은 이를 악물고 뛰고 또 뛰며, 승리나 다름 없는 값진 무승부를 일궈냈다.

파부침주라는 말이 그래서 어제 새벽 한국 축구에 가장 잘 어울렸다.

우연찮게도 이날 정치권에서도 파부침주라는 고사성어가 등장, 눈길을 끌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여당 일각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직권상정으로 본회의에 부의하려는 것에 대해 '파부침주'의 각오로 확실하게 싸우겠다는 심정을 밝히면서 나온 말이다.

국회 상임위에서 세종시 수정안 부결이 한나라당의 '자책골'로 비유된다면 본회의 부의는 '몰수패'라며 국민의 기대를 부응하지는 못하더라도 국민으로부터 버림받는 정치를 그만두라고 촉구했다.

말로 먹고사는 정치인답다. 월드컵 시즌을 맞아 연일 축구를 소재로 입담을 과시하고 적절한 단어 사용이 눈에 띈다.

지방선거 민심에서 판가름이 났고, 상임위에서 부결된 것을 굳이 본회의까지 가져가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복잡하고 해석이 난해한 정치권의 세종시 논쟁도 종착역에 다달은 것 같다. 한국 축구처럼 국민이 행복하고 만족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결론을 내줬으면 한다.

태극전사들은 또 다른 역사를 쓸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는 26일 밤 벌어지는 우루과이와의 16강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넘지 못할 산은 없다. 기본은 정신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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