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민심, 제대로 보기
설 민심, 제대로 보기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2.15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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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인>
사실 명절을 팔아 무슨 민심을 가늠해 보겠다는 발상은 촌스럽기 그지없다. 지나간 시절의 유물(?)이기 때문이다.

70년대만 해도 사람들이 완벽하게 소통하며 서로 의중을 타진하는 계기는 단연 명절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교통과 통신 그리고 각종 매체의 발달이 아주 초보적이었고, 정보교환이라고 해 봤자 일상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갈증을 그나마 해소해 준 것은 40대 이상들에겐 지금까지도 눈에 선한 옐로우 페이퍼 '선데이 서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저급하고 자극적인 내용일 망정 이를 통해 사람들은 몰랐던 정보를, 그리고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속내를 공유하며 세상을 진단했다. 당시 이 잡지가 SS JOURNAL로 통한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자리잡고 있다.

권위주의에 순치된 국민들의 의식 자체도 지금처럼 유연하지 못했던 터라 사람들이 모이지 않고서는 무슨 민심이니 여론이니 하는 것들을 쉽게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명절 민심, 그중에서도 온나라가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열병을 앓는 설과 추석민심이 단연 주목받았던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정치권이 내 놓은 설 민심은 여야에 따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본연의 업무보다는 엉뚱한 일에만 순발력을 발휘하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들을 만나 진솔한 얘기를 나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내공을 다해 진단했다는 설 민심은 하나같이 그럴싸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와 국민들을 걱정하는 충심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러나 설 민심이라고 해 봤자 지금이 선데이 서울을 끼고 놀던 시절도 아니고, 무슨 새롭고 특별한 것이 나올 리가 없다. 이미 얘기되고 또 언론에 보도된, 거기다가 오래전부터 정쟁의 빌미가 된 내용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걸 가지고 서로 분칠하고 호도하며 연휴가 끝나자마자 진흙탕 싸움을 재연할 태세다.

솔직히 말하면 설 민심은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가족과 고향친구들이 만났다 하면 4대강이니 세종시니 하며 언쟁을 벌였고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놓고서도 별의별 얘기들을 다 쏟아냈지만 결론은 늘 하나였다. '솔직히 관심없다'였다. 그러면서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나라가 온통 자기만이 옳다는 싸움질에 매몰된 것에 극도의 반감을 보였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선 특히 냉정했다. 찬반으로 나눠 갖은 논리를 동원해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다가도 한 가지에서만큼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목소리를 냈다. 양쪽 다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야당의 주장대로 원안이 우리나라 전체를 먹여살릴 턱도 없거니와 국가의 100년을 책임지게 하겠다는 MB의 설득 또한 터무니 없다는 것이다. 불과 신도시 하나를 신설하는 일인데 세종시가 너무 과대 포장돼 정치적 계략(計略)에 악용되고 있다는 불신의 발로였다.

문제는 이러한 공감에 뒤따르는 지역민으로서의 불편한 자각이었다. 왜? 충청도와 충청인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고 가지고 노느냐는 굴욕감을 숨기지 않았다. 꼭 지역감정으로 치부하지는 않았지만 자기들 입맛에 맞춰 '충청인의 선택' 운운하는 자체가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곳 사투리로 "그냥 하던 대로 냅둬!"라는 말을 많이 했다.

달라진 설 민심은 또 있었다. 가족과 친지간의 정이 예전같지가 않았다는 점이다. 수백 수십년 동안 전통으로 이어져 오던 종가에서의 차례보다는 가구별로 각자 알아서 지내는 경우가 많아졌고 형제들간 재산분쟁 혹은 부모 자식간 갈등으로 분위기가 썰렁한 상황도 주위에서 종종 목격됐다. 이 때문에 반쪽 귀성, 즉 며느리가 아예 시댁에 안 내려오고, 당연히 다 보여야 할 옆집의 형제들도 더러더러 볼 수가 없었다.

이러한 현상들을 목격하며 우리 사회의 어젠다가 지나치게 경쟁과 물질, 실효성에만 치우치는 작금의 현실에 근본적 문제가 있지나 않은지 한번 자문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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