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시험에 들지말라 했는데
성경은 시험에 들지말라 했는데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1.04 21: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인>
특별히 종교적 사유를 체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악과를 먹지 말며, 시험에 들지 말게 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이 요즘 들어 더욱 유별나게 다가 온다.

범인들이 아주 편의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함은 곧 선악을 분별하게 되면 필히 다툼이 일어남을 경계하는 것이고, 시험에 들지 말게 하라는 금언 역시 어느 누구라도 좋고 나쁨을 따지게 되는 시험에 놓일 경우 대립과 반목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의 굴레가 됨을 예시하는지도 모른다.

결국 분별없이 살면서 다만 악으로부터만 구제되기를 기원하는, 오로지 사랑과 용서와 이성만이 충만한 세상을 구현하라는 가르침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새해 벽두부터 선과 악을 분별해야 하는 가혹한 시험에 들고 말았다.

그 첫째가 6.2지방선거다. 전국의 모든 언론들이 가장 비중있게 다룬 신년 기획은 다름아닌 6월 선거의 진단과 전망이다. 그러면서 유권자의 선택을 올해 최고의 관심거리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앞으로 다섯달 동안 선과 악을 구분해 마땅한 후보를 골라내야 하는 '강요된 시험대'에 올려졌다. 그것도 무려 한꺼번에 여덟 번을 찍어야 하는 최악의 시험을 주문받고 있잖은가. 모든 사회현상 중에서 국민들이 가장 경멸한다는 '정치'로 인해 오히려 총체적으로 가위눌린 채 한 해를 시작해야 하는 기구한 운명을 맞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거리에서 혹은 행사장에서 불쑥 손을 내밀게 될 그 숱한 후보들을 만나면서 우리는, '왜 이런 시험에 들게 하십니까'를 원망할 겨를도 없이 선악을 따지고, 패를 가르며, 피아를 구분해야 하는 분별(分別)의 도가니로 내몰려지게 됐다.

정치와 정당은 선거로 흥하고 망한다고 하지만 얄궂게도 정치를 가장 혐오한다는 국민들은 되레 그 흥망성쇠를 한꺼번에 결정내야 할 판이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필승의 의지를 다지는 것을 보면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는 떨어졌나 보다. 정치에 멀미가 난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서로 승리만을 장담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는 6월이면 이명박 정권이 2년 3개월이 되기 때문에 중간평가라는 한 가지 화두만으로도 어쨌든 특단의() 관심사임엔 틀림없다.

2010년의 두 번째 시험은 세종시가 원인제공자다. 이미 충청인들은 세종시로 인해 말못할 시험에 든지 오래다. 세종시가 처음 입안될 때도 또 백지화나 수정안이 거론될 때도, 충청인들은 주인된 입장의 참여가 아닌 오로지 시험 대상자로서의 판단만을 요구받았다.

세종시를 만들자는 것도 그들이었고 중간에 없애자는 것도 그들이었다. 이런 와중에 충청인들은 철저하게 시험의 대상, 그것도 마치 임상실험을 위한 실험실의 쥐꼴이 돼 통치자들의 극약처방에 일희일비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수정안이라는 약물을 주입받고 과연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를 관찰받게 되는 참혹한 시험에 들기 일보직전이 아닌가. 11일 정부의 수정안이 발표되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반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말이야 수정안을 보고 난 후에 충청인 스스로 판단해 보라는 것이지만 그 이면엔 아주 고약한 나락이 숨어 있다.

원안이냐 수정안이냐를 놓고 서로를 분별해 좋고 나쁨을 따지자는 것은 그렇다 치자. 정작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몰핀을 맞은 실험실의 쥐가 서로를 물어뜯으며 골육상잔을 벌이지나 않을까 하는, 감히 생각하기도 싫은 개연성이다.

하지만 이는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고, 하여 아무리 시험에 든다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는 게 뜻있는 사람들의 새해 다짐인 것이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했는데, 시험에 들 수밖에 없는 지금의 굴욕·상실감이 과연 6월 지방선거에서 어떤 '생물'로 나타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