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인사
할아버지의 인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2.0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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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서기석 <119안전센터 구급대원>
출근길이었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걸어가는 반복된 발걸음과 초겨울 시린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탓에 옷깃을 한 번 더 여미며 난 습관처럼 앞만을 보며 나아간다.

그때 한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내 앞을 지나가다가 다시 내 쪽으로 돌아오셨다. 그러고 나서 내게 생긋 웃으며 인사를 건네신다.

"안녕하세요! 시원한 아침입니다." 출근길에 누군가의 인사를 받은 일이 처음인데다 낯선 노인의 인사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파트 단지인 탓에 혹시 경비아저씨인가 싶어 다시 한 번 보았지만 내 눈에 비친 그분은 난생처음 보는 얼굴이기에 그런 사실에 더욱 놀랐다.

"아네안녕하세요." 당황했지만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멀쑥한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낯선 분의 인사에 못들은 척 할 수도 있겠지만 밝은 미소로 먼저 인사를 건네는 어르신께는 누구라도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그렇게 노인분과의 첫 만남은 지나갔고 바쁜 일상을 마친 그날 저녁, 집에 온 난 아내에게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 얘기를 듣던 아내는 빙그레 웃으며 잘 아는 듯.

"아 그 할아버지, 지난번 우리 아기 데리고 장보고 올 때에도 엘리베이터에서 무거운 짐을 들어주셨어요.

참 고맙고 친절한 분이에요!" 라고 하는 것이다.

이어 아내는 그분의 여러 행적을 말하며 우리 아파트단지에서는 유명한 분이라고 한다.

보는 사람마다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는 것은 물론이며 단지내 쓰레기 줍기, 놀이터 위험한 물건 치우기 등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듯했다.

항상 밝은 미소와 친절함으로 이웃과 함께하는 101동 504호의 따뜻한 할아버지.

나는 소방관이자 응급환자를 살피는 구급대원이다.

신속함과 정확함을 무기로 구급 요청시 주민을 응대하는 대국민 서비스의 일환으로 응급환자 처치에 임하는 직업, 단순직업이기에 앞서 봉사정신을 강조하는 자리이다.

이런 직업적 정신을 늘 마음속엔 새기고 있지만 반복되는 일상과 다양한 현장 상황속에서 때론 짜증도, 불평과 불만도 토로하며 후회와 반성이 반복되는 게 요즘의 나의 생활이다.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만나는 사람에게도 인사하는 할아버지.

그분의 무한한 이웃사랑과 따뜻한 마음씨, 밝은 미소는 이런 나의 생활에 큰 가르침을 주었다.

마치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잠시 멍한 나에게 진정으로 봉사하는 생활의 의무가 무엇인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신 것이다.

오늘 아침도 찬바람을 가르며 더욱 씩씩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하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다짐한다.

할아버지가 내게 친절함과 따뜻함이란 직책을 임명하셨기에, 그 직책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해 주신 할아버님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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