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드라마의 상상력
역사 드라마의 상상력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1.0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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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미실'이 일반 대중에게 부각되기 시작한 일은 소설을 통해서였다.

1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고료가 내걸린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에 당선된 김별아의 동명소설로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런 '미실'이 요즘 한창 월·화요일 밤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는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고현정이 역할을 맡고 있는 '미실'은 사실 역사적 실존여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고구려·백제·신라를 비롯한 한반도 고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미실'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다만 신라 화랑의 일대기를 기록한 역사서 <화랑세기>에 등장하나, 역사학계에서는 현재 전해지는 <화랑세기>가 필사본으로 위작일 가능성이 있다는 논란이 있다.

김별아의 소설 '미실'은 신라 진흥제를 비롯해 진지제, 진평제 등 당대의 영웅호걸을 미색으로 사로잡은 미실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 역시 고현정의 빼어난 연기력에 기대면서 극중 인물 '미실'을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구성하고 있다.

대중들은 역사를 소재로 하는 소설과 드라마 등 창작물의 이야기 전개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역사학계에서는 드라마와 소설 등 역사를 다루는 작품의 역사적 사실 왜곡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제기한다.

이러한 대립구조에서 (역사적으로) 옮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현대인은 사실 아무도 없다.

역사가 철저하게 승자에 의해 기록되는 것이라는 명제를 전제할 때, 그 사실 여부를 따지는 일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다.

40%대의 시청률을 넘나드는 드라마 '선덕여왕'과 200억 원대의 어마어마한 제작비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아이리스'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TV드라마가 다시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듯하다.

한류열풍을 선도했던 TV드라마가 다시 영광을 재현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일견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당초 50회분 기획에서 12회 연장을 결정한 이후 또다시 연장이 논의되고 있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기에 영합해 연장되는 드라마의 대부분이 극적 긴장감을 급격하게 떨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더욱 그렇다.

지난 3일 방영된 '선덕여왕'의 48회분은 미실의 난(이 역시 역사적 근거는 미약하다)이 덕만의 역습에 의해 평정되는 과정을 그렸다.

이 과정은 플롯의 5단계 가운데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절정의 단계에 해당되나, 정작 핵심 인물인 유신과 비담이 진평왕을 구해내는 극적장면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지 못해 재미가 반감됐다.

한국의 TV드라마는 '겨울연가'와 '대장금' 등 문화콘텐츠 수출에 큰 몫을 한 바 있다.

지금 부흥기를 예고하는 드라마들은 당연히 해외시장을 염두에 두어야 하나, 이러한 연장 방영을 위한 이야기 늘이기는 당연히 극적 긴장감을 떨어트리는 주요 요인이 될 것이다.

'미실'과 '선덕여왕'은 여성을 이야기의 주축 인물로 설정하고 있다.

우리 역사의 흔적에 그토록 커다란 여성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요소는 흔하지 않다.

따라서 이런 등장인물을 소재로 잘 만들어진 드라마는 굳이 페미니즘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해외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그것이 역사적 진실에 얼마나 충실한지의 여부를 드라마를 통해 가늠하기 보다는 문화원형에 대한 창조적 상상력이 훨씬 중요하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갈증은 다큐멘터리로 해소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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