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관한 단상
10월에 관한 단상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0.2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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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선암사에는 기차가 서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노래합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고.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선암사 전문>

시인이 노래하는 눈물의 참된 의미를 나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사랑하는 이와 멀리 떨어져 삶의 쓸쓸함이 사무칠 때, 게다가 막연한 공포로 덧칠되는 신종플루, 그 몹쓸 병에 걸린 어린 자식들의 소식은 저절로 가슴을 미어지게 하고 나도 모르게 눈을 껌뻑이게 합니다.

고창 선운사에는 해마다 늦여름이면 사랑이라는 이름 하나로 충분히 가슴 아픈 꽃이 장관을 이룹니다.

상사화로도 불리는 꽃무릇의 처연한 기운이 무너지는 날.

선운사 숲속에는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도 잎을 만날 수 없는 전설로 남아 애틋한 가을을 노래합니다.

시월이 다 가고 있습니다.

누구는 가을걷이로 분주하고, 또 그 누군가는 듣도 보도 못하던 새 바이러스 탓에 밤새 고열로 허덕이는 어린 자식의 모습이 안타까워 잠을 못 이루는데.

툭- 하고 발밑에 떨어지는 낙엽에 가슴 철렁하던 기억으로 중년의 가을은 스산합니다.

두려움은 외로움과 맞닿아 있습니다.

평생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대입 수능을 코앞에 두고 창궐하고 있는 신종플루에 대한 조바심으로 가슴 떨리는 자식들을 생각하면 눈물 납니다.

어쩌면 우리는 몰라도 될 만한 것들에 너무 길들여 있는 건 아닌지요.

그로 인해 덮쳐지는 집단의 공포에서 나만 홀로, 내 가족만이 격리되어 병마와 씨름하면서 한없는 외로움으로 추락하는 줄도 모르는 시월의 끝자락에서 다시 시인은 노래합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가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 수선화에게 전문>

시월이 지나갑니다.

뿌연 아침안개 속을 무거운 책가방과 하얀 마스크로 시달리는 이 땅의 아이들을 뒤로한 채 시월이 지나갑니다.

보고 듣는 일은 홍수처럼 쏟아지면서 낯선 병에 대한 시름과 공포를 쓸데없이 키우는 사이 어느 덧 시월은 갑니다.

떨어져 수북이 쌓이는 낙엽들 위로 할 말이 없는 흰색 마스크의 기나 긴 행렬이 서러운, 시월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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