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주와 샘리
이봉주와 샘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0.22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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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뛰어 본 사람은 안다.

42.195km, 그 백리가 넘는 길이 얼마나 막연한지를.

달려 본 사람은 안다.

마라톤, 그 고독한 질주에서 생기는 인간 한계의 고통과 그 고통을 넘어서는 순간에 피어오르는 야릇한 희열을.

국민 마라토너 봉달이 이봉주가 20년 동안의 기나 긴 독주를 마감하고 은퇴했다.

충청도 사나이 이봉주는 대전에서 열린 제90회 전국체전에서 공식 은퇴경기를 치르면서 길고도 아름다운 뜀박질을 마감했다.

2시간15분25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이봉주의 이번 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모두 41번째.

그 마흔 한 번의 완주를 한 마라토너는 아직 지구상에 없으며, 4차례에 걸친 연속 올림픽 출전의 기록도 경이롭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는 여러 가지로 상징성이 적지 않으며 특히 고향인 충청도와의 인연도 남다르다.

그가 공식은퇴경기로 삼은 이번 대회는 제90회 전국체전이며, 그가 첫 풀코스 완주한 대회는 지난 1990년 충북에서 열린 전국체전이었다.

봉달이 이봉주는 1996년 후쿠오카 마라톤대회 우승을 비롯해 방콕아시안게임(1998년), 보스톤 마라톤대회(2001년), 부산아시안게임(2002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2007년) 등의 화려한 성적을 거두고 이제 고독한 질주를 멈추었다.

그가 2000년 도쿄마라톤대회에서 세운 2시간7분20초의 한국 신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이봉주 그가 아름다운 건 마라토너에게는 치명적인 짝발에 평발이라는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면서 외로운 질주를 계속해 왔다는 데 있다.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 레이스 중 30km를 지나는 지점을 한계점이라고 한다.

1999년 태릉선수촌을 뛰쳐나오면서 선수생활에 최대 위기를 겪기도 했던 이봉주의 마라톤 인생은 그 자체가 삶의 질곡이었다.

이봉주의 은퇴경기를 보면서 나는 국내 최정상의 기타리스트 샘리(Sam Lee)의 연주곡 Transport to Wonderland를 듣는다.

일반에게는 다소 생경할 수 있겠지만 샘리는 그의 이름을 제외하면 한국 대중음악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10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기타를 잡기 시작한 샘리는 1995년 귀국한 이후 국내에서 발표된 음반 재킷 가운데 가장 많이 이름을 올려 논 인물이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샘리는 말한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 사람이 대단하고 그래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나보다 잘 할 수 있는 건 그 사람이 나보다 기타에 대한 열정과 연습량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라고.

음악의 본질마저 다치게 할 정도로 지금 한국 대중음악의 트렌드는 특정 장르에 함몰된 경향이 있다고 경계하는 샘리는 "장르의 다양성을 위해 인간적인 소리를 끊임없이 만들어 소통하고 싶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대중음악 전문가들은 샘리의 기타연주에 대해 '영혼을 울리는 소리'라고 극찬한다.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타박타박 뜀박질하면서 연습을 포함, 지구를 네 바퀴 넘게 달린 이봉주의 불굴의 도전정신도 우리의 영혼을 울린다.

불편한 다리를 목발에 의지하면서도 본질을 잃지 않으며 끊임없이 연습에 몰두하는 샘리의 인간에 대한 존중과 기본에 충실한 음악세계는 또 우리를 얼마나 감동이게 하는가.

그 아름다운 인간승리의 이중주에서 세종시를 생각한다.

그 역시 사람이 하는 일. 본질에 충실하고 기본이 바로서는 나라는 이미 파헤쳐진 세종시에서 본질을 지키는 일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이번 일요일 밤에도 한 개그맨은 말할 것이다.

"해 봤어? 안 해 봤으면 말을 하지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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