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희의 편린(片鱗)들
홍명희의 편린(片鱗)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0.1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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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덕현 <본보편집이사>
다른 시도와의 비교평가에서 충북의 상대적 박탈 내지 소외를 얘기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하나 있다. 광복 이후 총리 한 명 내지 못했다는, 이른바 불임(不姙)론이다.

사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은 많이 상한다. 오죽 못났으면 그럴까 하는 자괴감이 우선 엄습하기도 하고,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를 곰곰 생각하다간 열이면 열 지역과 관련된 부정적인 면만을 떠올리게 된다.

이럴 때, 비록 드러내지는 않지만 마음 한 구석에 슬그머니 그려지는 두 사람이 있다. 이기붕과 홍명희다. 괴산군 청천면 후산리에서 태어난 이기붕은 1960년 3.15 부정선거를 통해 부통령에 당선된다. 또 지금의 괴산읍 동부리가 출생지인 홍명희는 북으로 넘어가 1962년까지 김일성 초대 내각의 부수상을 지냈다.

만약 이기붕이 부통령에 당선된 지 불과 한 달만에 이승만 부패정권의 하수인으로 찍혀 4.19의 철퇴를 맞지 않았다면, 아울러 홍명희가 6.25전쟁의 원흉인 김일성의 수하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떳떳하게 총리격인 인물을 두 명이나 가졌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남과 북을 통틀어서 말이다.

이러한 홍명희가 다시 요주의(?) 인물이 됐다. 괴산군이 홍명희 문학제에 관여하고자 예산까지 세웠다가 반대 세력에 부딪쳐 뜻을 접었고, 지금까지 매년 이 행사를 힘들게 열어 왔던 충북작가회의 등은 올해도 회원들의 쌈점┠을 모아 오는 24일 홍명희 문학제를 개최해야 할 판이다.

민족문학과 민족해방운동의 태두인 홍명희는 여전히 이념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문화적 가치를 익히 알고 있는 괴산군도 홍명희에 대한 기념사업이라고 해 봤자 소설의 주인공 임꺽정을 지역특산품인 고추와 함께 가로등 꼭대기에 형상화하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광수 최남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였다는 홍명희는 이처럼 길거리 가로등을 하릴없이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억속에 작은 편린으로 떠돌고 있다.

흔히 말하듯 문학이 시대를 담아 내는 그릇이자 거울이라면 문학과 이념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다. 때문에 역사의 진화에 따라 문학도 변이를 거듭해 왔고 바로 그 문학을 통해 우리는 시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민주주의 체제의 문학이 휴머니즘을 전파한 것 못지않게 사회주의의 그늘에서도 불멸의 작품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와 인류를 일깨우고 감동시켰는가 하면, 이것이 역사의 한 축으로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학이 이념의 편의적 잣대에 휘둘리고 우리나라처럼 여기에 흑백논리의 정치적 이해까지 가미될 경우 그 결과는 어떻겠는가. 일그러진 인성(人性)과 사유의 착종만이 횡행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그런 현상이 나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충북에서 홍명희의 '홍'자만 꺼내도 시끄러운 논란이 빚어지는 것 못지 않게 전라도 정읍과 고창에선 전봉준 기념사업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고, 보성에선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공원이 몇년째 '빨갱이 시비'에 휘말려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남북이 동족상잔의 전쟁을 벌였고 또 지금까지도 분단의 기미(羈)를 둘러쓴 채 서로가 신음하는 현실은 분명 씻을 수 없는 민족적 비극이다. 이럴 때 정작 문학이 할 일이란 이념의 이런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것일 텐데도 현실은 오히려 그 이념이 문학까지도 겁탈하며 매장시키는 형국이다.

홍명희의 월북과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선 당연히 냉정한 진단과 함께 대한민국 체제 그리고 역사인식에 근거한 평가를 받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의 원천적인 문학혼마저 싸잡혀 매몰되고 사장되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가 태어난 괴산의 시골 마을엔 거의 매주마다 적을 땐 십수명에서 많을 땐 기백명까지 외지인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간간이 외국인들도 찾아 여기저기 샅샅이 뒤진다는 현지인의 설명이고 보면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사이에 이곳은 어느덧 문학순례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이젠 이런 질문에 답을 내려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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