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곡(思夫曲)
사부곡(思夫曲)
  • 문종극 기자
  • 승인 2009.10.1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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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오 마이 갓(Oh my God)"

이 말을 들으면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떠올려진다. 아니 오나시스라는 성이 추가로 붙기 이전인 재클린 케네디가 생각난다.

1963년 11월22일 텍사스의 주도 달라스에서 재클린은 남편 케네디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이때 한발의 총성이 울리면서 갑자기 케네디 대통령이 머리를 재클린 쪽으로 젖히며 고꾸라졌다. 순간 재클린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가 '오 마이 갓'이었다.

미국 제35대 대통령 케네디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재클린도 그날의 총성과 함께 10여년간의 결혼생활과 3년간의 퍼스트레이디 생활이 끝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남편인 케네디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비명 같이 지른 "오 마이 갓". 놀람과 슬픔, 안타까움 등을 내포하는 '오 하나님' 정도로 해석되는 말이지만 당시 케네디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미국인들은 재클린의 이 한마디에 세상에서 더 이상 쓸 수 없는 온갖 수식어를 갖다 붙였다. '오 마이 갓'이라는 말이 하루 아침에 유명한 명언이 된 것이다.

적어도 영원한 퍼스트레이디로 남아줄 것으로 생각했던 재클린이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하면서 미 국민들을 경악하게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후 오나시스라는 성이 하나 더 붙은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는 더 이상 미 국민들의 추앙의 대상이 아니었고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면서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그와 함께 '오 마이 갓'도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평상어로 되돌아왔다. 이렇게 보면 '오 마이 갓'은 재클린이 남편인 케네디 대통령에게 부른 마지막 '사부곡(思夫曲)'인 셈이다.

'사부곡' 하면 뭐니뭐니 해도 동방예의지국인 한국 여인들의 그것이다. 지난 98년 4월 한국의 언론에서는 조선시대의 한 여인의 '사부곡'으로 뜨거웠다. 안동의 한 양반가 묘지를 이장하던 중 여인이 쓴 한 통의 편지가 발견됐는데 그 내용이 먼저간 남편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명종~선조 때 살았던 이응태의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죽은 남편을 그리는 여인네의 애절함과 간절함이 절절히 묻어나오는 편지다.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표현의 절제가 지금보다 더 했을 조선시대 여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애통한 '사부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청주에 절절한 '사부곡'을 부르는 여인이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히운출리(해발 6441m)를 등반하다 실종돼 설산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직지원정대 민준영 등반대장의 부인 정미영씨(36)가 남편이 걸었던 길을 밟아보기 위해 네팔로 출국했단다.

'남편이 등반하다 사라진 히운출리 북벽코스를 직접 눈으로 보고 되짚어보고 싶다'는 것이 이유다.

주검이 이역만리 설산에 있어 그리움이 더욱 사무칠 것이다. 히말라야를 향해 그가 부를 '사부곡'은 그래서 재클린이나 조선시대 이응태 부인의 그것보다 더 절절하리라는 생각이다.

민준영·박종성 대원의 가족들에게 늘 행운이 함께 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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