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삶, 그리고 눈물
아버지의 삶, 그리고 눈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0.0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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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인>
1997년, 아버지들은 서러웠다. IMF 환란의 원인이 무엇인지조차 따져 보기도 전에 그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공장 문을 닫았는가 하면, 평생을 같이했던 동료들을 눈물로써 보내야 했다.

아침 출근시간, 갈 곳이 없던 가장들은 산에서, 때로는 공원에서 그리고 어느 한적한 골목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격통을 쏟아내고 쓸어 담았다.

이 때문일까. 그해에 나온 소설 '아버지'는 살아가면서 어머니에 비해 쉽게 입에 올리지 않는 아버지를 새롭게 탄생시켰지만 그 이미지는 역시 서럽기만 했다.

50대 중년의 주인공은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이를 숨기면서까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만을 더 걱정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대화가 끊기는 가족들로부터도 말못할 외로움을 느끼던 그였지만, 막상 죽음을 눈앞에 두고선 딸의 결혼자금과 아들의 장래문제가 더 큰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몸에 병이 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죽음을 준비하면서도 처자식부터 걱정하는 대한민국의 이러한 아버지 상이 끝내 사람들을 울리며 소설100만부 판매라는 경외적인 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로부터 10여년, 이 땅의 아버지들은 또다시 거리로 내몰렸다. 10년 전에도 그랬듯이, 어휘조차 생소한 서브프라임모기지가 원인이라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졸지에 이 나라 가장들은 짓눌림을 당했다.

하루 아침에 정든 직장을 떠나는 아버지들이 속출했고, 비록 경기가 회복됐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이런 사회적 위기감에서 내 가족만큼은 끝까지 지키겠다며 망루에 오른 아버지는 새카맣게 타 죽은 채로 냉동고에 갇혀 있고, 평생을 자동차만 만들어 온 못난 가장들은 최루탄에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도 어느덧 죄인이 됐다.

경제위기는 곧 가정의 위기이고, 가정의 위기는 곧 가장의 책임으로 돌아 온다.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이 나라 아버지들은 미련맞게도 이런 등식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탓한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머리가 허옇게 될 즈음, 그들은 지난날의 여정을 반추하며 '나는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현실에 조바심을 내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 점점 헛헛해지는 삶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내가 생전의 아버지로부터 눈물을 본 것은 딱 한 번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 때에도 못 보던 눈물이었다. 그건 눈물이 아니라 가슴 절절한 외로움이었는지도 모른다. 기대했던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늦은 밤에 시골 집을 찾아 '죄송하다'고 울먹이자 아버지는 "글쎄 이놈아"라는 말만을 되뇌며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장에 나갔던 아버지는 저녁이 되어서야 술에 취한 채 돌아 왔다. 그러고선 마루에 벌렁 누워 누가 듣건 말건 흘러간 노래를 내리 부르는 게 아닌가. 아주 서럽게 말이다. 나는 아버지가 노래를 한다는 것도 잘 몰랐지만 그렇게 많은 노래를 알고 있었는지도 그때서야 처음 알았다.

아버지들은 이렇다. 어머니처럼 애틋함과 섬세함은 없어도 그 마음의 깊이는 더 간절하다. 비록 표현은 안 하지만 그 느낌만큼은 더 많은 감동과 감성을 수반한다. 누가 말한 것처럼 아버지와 자식은 마치 철길과도 같아 끝까지 하나가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말없이 가족을 위하고 이들이 세상에 빛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런 아버지들이 이 땅에 또 다른 꿈을 심어주기 위해 히말라야를 찾았다가 두명이나 실종됐다. 남들이 추석 연휴에 들떠 있을 때 그 가족들은 북받치는 서러움을 억눌러야만 했다.

적당히 피해가고 돌아갈 수도 있었건만 이 아버지들은 '아버지의 외로운 도전'을 택했고, 그리고 가족의 이름을 가슴에 새기며 먼길을 떠났었다. 실종 대원들이 현지에서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남겼다는 편지도, 직접 전하려는 용기가 없었던지 다른 사람의 컴퓨터에 쓰여 있었다.

그렇다. 아버지들은 늘 이렇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반드시 살아 돌아와 아버지들만의 감동을 줄 거라고 끝까지 믿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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