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기념 조형물 건립 논란
4·19기념 조형물 건립 논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9.1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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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강태재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최근 4·19민주혁명 기념 조형물 건립을 두고 그 규모며 설치장소 등에 관해 설왕설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참에 여러가지 기념조형물에 대해 시민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져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그동안에도 무분별한 조형물, 금석문들이 역사를 왜곡하거나 침소봉대 과장하거나 심지어 날조하기까지 많은 물의를 일으킨 사례가 적잖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민중운동을 기념하는 조형물의 경우는 더욱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바로 청주 삼일공원이 그렇습니다. 독립을 선언한 민족대표 33인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전국의 수많은 민중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는 고통과 희생 또한 그에 못지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민중을 위한 배려는 없었으며,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에 빌붙은 파렴치한 인물까지 동상을 세웠던 일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결국 민중의 손에 의해 변절자의 동상이 끌어내려지고, 이제 다시 삼일공원을 정비하는 것은 당연한 역사의 순리일 것입니다. 다행히도 청주시와 보훈청이 예산을 세워 삼일공원을 정비하면서 충북의 삼일운동을 기록하고, 농민이 주축이 된 충북의 민중들이 횃불을 들고 만세를 부르며 독립을 외치던 모습을 형상화하여 나타내고자 한 것은 민중운동을 기념하는 조형물의 설치개념에 걸맞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여, 4·19기념조형물은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충분한 논의와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줄 압니다. 나아가 이참에 우리 고장에서의 외세에 맞선 투쟁과 민중항쟁, 민주화운동을 역사적으로 고찰하여 정립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기념조형물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지난주에 청주성탈환축제가 있었습니다만, 이 또한 청주성 탈환을 이끈 세 분 의병장, 승병장의 비석만 있을 뿐입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맞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민초들을 위한 것은 기록도, 기념물도 없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군이 척양척왜(斥洋斥倭)를 외치며 동학농민전쟁을 일으켰을 때, 청주에서는 전후 세 차례 전투가 있었으며, 그 마지막 12월9일 김개남 부대가 청주성을 공격하다가 일본군의 현대식 무기의 화력 앞에 죽어간 현장이 오늘날의 육거리 무심천 일대입니다만, 그들을 기리기는커녕 역도로 몰아 100년을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제 그들을 위한 그 무엇이라도 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이밖에도 민주화운동에 몸 바친 이들 또한 모른 척 할 순 없을 것입니다.

청주에서의 4·19는 1960년 3월9일 민주당 대통령후보자 연설회를 계기로 고등학교 학생들이 시위를 계획했으나 경찰에 의해 제지되었고, 3월12일, 4월16일에도 불발되었다가 4월18일에는 경찰의 저지를 뚫고 시내로 진출하여 거의 모든 고등학교 학생들이 연대하여 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이때 시위를 주도한 오성섭, 신광호, 이용희, 이세현, 임병준은 구류처분을 받았고 30여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습니다. 4·19 기념조형물은 전국적으로 서울 대구 마산 광주 4개 도시에 세워져 있는 것이 대표적이고 그밖에 특정 학교의 교정에 세워진 사례는 적잖은 것으로 압니다. 청주농고에 세워진 것이 그런 경우이지요. 아무튼 역사적 사건과 이를 기념하는 조형물은 그에 걸맞은 규모와 위치 그리고 표현양식이 조화를 이뤄야 할 것인즉 다양한 의견수렴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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