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의 카오스 시대
이념의 카오스 시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7.13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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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인>
   좌파와 북한은 같은 개념인가. 그리고 대명천지에 군복 차림으로 권총까지 들이대는 예비역 군인들이 과연 보수를 대표할 수 있나.

하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 됐다. 진보가 움직였다 하면 곧바로 보수에 의해 북한색깔로 떡칠되고 있고, 역으로 보수는 진보에 의해 백주의 대로에서 불붙은 LPG통이나 굴리는 험악한 부류로 묘사된다.

이념이 넘쳐나지만 지금처럼 이념이 죽은 적도 없다. 결코 이념일 수 없는 것들이 이념의 탈을 쓰고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우와 좌, 보수와 진보가 변질돼도 너무 변질되는 것이다. 이념이 본질을 벗어나 서로 충돌하게 되면 뒤에 남는 건 동물적인 인간파괴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이것을 심각하게 우려할 시점에 와 있다.

모든 이념은 그것이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났을 땐 한 가지 똑같은 당위성으로 무장됐다. 어떻게 하면 인류를 더 자유롭고 평등한 토대 위에서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그랬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그랬다. 각각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존중이다.

다만 공산주의의 몰락처럼 이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문명의 전이를 따르지 못하거나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치며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을 뿐이지 그것들의 원초적인 '이상'마저 아예 생명력을 다한 것은 아니다. 이는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목격된다.

예를 들어 복지정책의 경우 파이가 커지면 분배와 형평을 중시하는 좌파적 시각이 힘을 얻을 것이고, 국가나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분배보다는 성장을 우선시하는 우파적 정책이 설득력을 얻는다. 결국 이념이란 상호 보완 내지 경쟁과 견제 차원으로 인식돼야지 아예 죽어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호도돼선 안된다.

정작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념의 변질이다. 본질을 왜곡해 자의적 응용을 들이댈 경우 그 피해는 참으로 엄청났다. 유대인 학살, 킬링필드, 그리고 남북이 피의 보복을 벌인 6·25 양민학살 등, 역사는 냉혹하게 이를 입증해 왔다.

지금처럼 보수가 진보를 무조건 북한으로 분칠하고, 진보는 보수에 대해 같이 숨조차 쉴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는 건 분명 이념의 왜곡이다. 서로가 이념을 움켜쥐면서도 이념의 목줄을 끊고 있다.

북한과 좌파는 결코 동일시 될 수가 없고, 체제 수호를 외치며 군복에다 권총까지 휴대한 채 반대파를 겁박하는 사람들도 결코 보수가 될 수 없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일성과 김정일'이 곧 헌법이 되는 북한은 공산국가도 아니고 사회주의 정권도 아니다. 굳이 북한의 이념을 따진다면 돌연변이, 혹은 헷갈리는 변종 이데올로기쯤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진보와 좌파는 끊임없이 북한을 말하고, 노크할 수밖에 없다. 북의 이념이나 국가정체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다. 민족이 하나가 되려는 염원은 그 어떤 이념보다도 강하다.

"독재에 항거하라"는 DJ의 노욕(?)도 시대착오적 발상이거니와, "지난 10년간 북한에 퍼 준 돈이 모두 핵무장하는 데 이용됐을 것"이라는 MB의 언급 역시 국가 리더로서 할 말이 아니다. 둘 다 이념의 명분에 너무 매몰됐다.

스스로가 반독재 투쟁으로 대통령까지 한 DJ는 광주와 6월 항쟁으로 상징되는 지난한 민주화 역정과 국민의식의 성숙을 되레 부정하는 꼴이 됐고, MB는 실체를 잘못 봐도 크게 잘못 봤다. 민간차원의 교류는 물론 북한에 건네진 쌀과 비료까지 싸잡아서 핵무기와 연결짓겠다는 건가.

그나저나 "자유민주주의를 붕괴시키려는 세력으로부터 충북을 지키기 위해 도지사 재선에 나선다"는 정우택 지사의 뜻밖의 발화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러다간 시·군의원 출마자들까지 독재타도나 체제수호를 외치며 뛰쳐나올지 모른다. 이념! 네가 요즘 고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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