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의 추억과 장마
소나기의 추억과 장마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7.0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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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시절에는 여름이 좋았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낮에는 파란 바다에 뛰어들어 시원하게 헤엄을 즐겼다. 짙푸른 숲속을 헤매며 매미를 잡는 재미도 쏠쏠했다.

비오는 날도 좋았다. 논에서 실개천으로 흘러내리는 빗물 속에 쪽대를 대고 붕어와 가물치 등을 잡는 재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놀이 중 하나였다.

특히 시원하게 주룩주룩 내리는 소나기가 있어 여름이 좋았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는 더욱 신난다. 바다에서 헤엄을 즐기면서 맞는 소나기는 기분이 그만이다. 시원함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샘물로 샤워를 한 후 마루에 앉아 억척같이 내리는 소나기를 감상하는 맛은 십년묵은 체증이 싹 가시는 바로 그 기분이다. 게다가 형수가 내오는 콩과 보리를 섞어 볶아내놓는 간식은 그 시대 비오는 날의 추억 중 압권이 된다. 그래서 소나기가 좋았다.

중년이 된 지금도 소나기는 좋다.

어릴적 추억과 함께 중학생일 때 읽은 것으로 기억되는 소설 때문인 것 같다. 황순원의 소나기다. 수줍음이 많은 순박한 시골 소년과 서울에서 온 세련되고 얌전한 소녀의 풋풋한 사랑, 아니 예쁜 사랑에 매료됐었던 것 같다. 드러내놓지 못하면서도 절절하게 다가오는 그런 사랑을 동경했던 것 같다.

분홍 스웨터 소매를 걷어올린 가느다란 팔과 다리가 마냥 흰 소녀. 징검다리 중간에 앉아있는 소녀를 보고 징검다리를 건너지 못한 채 개울둑에 앉아서 소녀가 비킬 때까지 기다리는 소년. 조약돌 하나를 남기고 다시는 개울가에 나타나지 않는 소녀(죽음)결국 소나기가 이들의 예쁜 사랑을 갈라놨지만 소녀와 소년은 소나기처럼 짧지만 굵은 사랑을 했고 소나기가 지난 뒤에 갠 하늘처럼 깨끗하고 순수한 사랑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지금도 소나기가 좋다.

그런 소나기가 주룩주룩 내린다. 사무실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본다. 시원하다. 답답한 속이 뚫리는 것 같다.

그런데 밖의 사람들은 분주하다. 비를 덜 맞기 위해선지 우산을 쓴채 달린다. 어떤이는 바람에 쏠리는 우산을 바로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들에게는 소나기가 반갑지 않은 것 같다.

그때서야 장마철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머리속이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기상청이 올해부터 장마예보를 중단했다. 1961년부터 시작했던 것을 48년만에 그만하겠단다. 이유는 지구온난화 탓이다. 장마전선 형성 전이나 소멸 후에도 강한 비가 수시로 내리는 등 한반도의 여름철 강수 특성이 많이 변했다. 이 때문에 장마를 예측한다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장마는 6월 중순에서 7월 하순의 초여름에 걸쳐서 오는 많은 비를 가리키는 것이며, 그 시기를 장마철이라 부른다. 사전적인 뜻이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장마철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전에서도 이를 바꿔야 할 것 같다. 시기를 빼야 한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시도때도 없이 많은 비가 내릴 수 있어 장마철을 일정한 시기로 못박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장마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음에 따라 장마라는 이름을 없애고 아열대 지방처럼 우기라는 기간을 정하자는 주장도 제기될 정도다.

당장 여름휴가 계획을 잡고 있는 피서객들이 아쉽게 됐다. 휴가시기를 선택하는데 필수였던 기상청 장마예보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소나기가 지나쳐 집중호우가 되면 늘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생한다. 그 만큼 항구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상청 예보를 통한 임시방편의 대비다. 그래서 기상청의 장마예보는 재개돼야 한다.

오는 12월에 개소 예정인 청원군 오창과학산업단지 '국가기상수퍼컴퓨터센터'가 이를 해결해줄 수 있을지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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