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만주벌판을 호령했다
우리는 만주벌판을 호령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6.2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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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인>
   차기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내정자가 모두 충남 출신인데다 다음번 총리마저 충청인이 될 거라는 소문에 언론이 호들갑을 떨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툭하면 터져 나오는 충청홀대론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분위기는 마치 '충청도 르네상스'를 구가하는 것 같다.

이런 일이 상시적 잣대로 평가된다면 당연히 박수를 받아야겠지만 어쩐지 떨떠름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우선 문제의 세 자리를 충청인이 차지한다는 가설에 유독 사족이 많이 달리는 것이 그렇다. 그 압권이 보수언론들의 기상천외한 정치적 해석이다.

이런 기사까지 등장했다. 간추리면 이렇다. 충청 출신 인사들의 요직 발탁은 MB가 천명한 '중도 실용주의'와도 일맥상통할 뿐더러 차제에 정부와 한나라당이 충청도 연대론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수와 진보의 아귀다툼에서 벗어나려면 충청인의 총리 기용은 필연적이며 이래야만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진단까지 내놨다.

대충 읽어보면 그럴 듯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 저변엔 오히려 충청도에 대한 무시와 멸시가 뿌리 깊게 배어 있다. 졸지에 충청인은 이도 저도 아닌 흐리멍텅한 '중간인'이 되어 버렸고 총리 한 자리만 주면 만사가 형통하는 같잖은 족속이 됐다.

막상 총리설에 휘말리고 있는 이원종 심대평 이완구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본인들의 정치적 소신이나 역량은 오간 데 없고 오로지 무색무취한 '중간인들의 대표'로서 이름이 거론된다고 생각해 보면 말이다.

하기사 이들에게 총리 자리가 맡겨진다면 못할 이유도 없다. MB와 현 정권으로부터 세종시의 정상추진과 첨단의료복합단지의 충청 유치라도 확약받으면 가능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누가 총리를 하든 적어도 정치의 노리개가 되었다는 비판은 면하게 된다.

그렇더라도 이들이 스스로의 입지를 고민한다면 정작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떼어 놓은 당상의 도지사 3선을 고사해 아름다운 퇴장의 대명사가 된 이원종 전 충북지사는 앞으로도 끝까지 '자리'에 초연해야 인생의 진정한 승자가 된다.

심대평씨는 자유선진당을 전국 정당화하는 데 올인해야 정치적으로도 클 수 있고, 이완구 충남지사는 지금의 역할에 충실할 때만이 본인의 야망인 대권까지도 꿈꿀 수 있다. 세명 모두 뜬금없이 나도는 총리설에 혹하지 않은 것은 불행중() 다행이다. 정치의 회색분자는 JP로 충분하다.

현 정부와 여당이 충청도의 민심이반을 염려하는 것은 옳은 처신이다. 실제로 이곳을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내년 지방선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권 초기도 아닌 별볼일 없는 시국에 자리 하나를 들고 흔든다고 해서 충청의 민심이 움직일 거라고 착각한다면 아주 나쁜 사마리안이 될 뿐이다. 감읍(感泣)은커녕 더 혹독한 심판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최근의 분위기에 끝내 아쉬운 것은 왜 충청의 정체성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식의 말랑말랑한 대상으로 투영되느냐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영호남의 주변인 취급을 받고 있다.

이게 아니라 오히려 대세를 휘어 잡는 지역색깔로 부각되는 게 맞지 않는가. 유관순과 윤봉길 김좌진 한봉수 신채호 등 충청인의 상징인 이들의 기개를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그렇다! 충청인은 김좌진처럼 만주벌판을 호령하면 호령했지 비굴하게 연명과 안위를 꾀하지는 않았다. 먼저 떨쳐 일어나 외쳤지 대세에 기생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왜 지금, 어떻게, 무슨 이유로 이런 대접을 받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심각하게 되물어야 할 때가 됐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내년 지방선거, 더 나아가 차기 대선에서 반드시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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