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총장
시인과 총장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5.21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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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가 온다. 5월의 하늘에서 비가 온다.

   시인 황지우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 바 있다.

(전략)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酒店)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황지우.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中>

나는 2007년 8월24일치 이 난에 '예술과 학력'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5월에 내리는 비를 맞으며 시인 황지우의 시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의 한 대목을 읊조리고, 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떠올리는 것은 이러한 연상이 모두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시인일 수밖에 없는 황지우가 최근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총장직을 떠났다.

따라서 '학자, 교육자, 예술가의 구별이 없는 교육과정을 통하여 평범한 예술 인력만을 양성해 왔다'는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설립이념과 황지우 사이에 일단 직접적인 상관관계는 사라진 셈이다.

나는 시인인 황지우가 대학 총장에서 다시 시인으로 돌아간 배경에 대해 가타부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다양한 예술 장르와 인문학, 뉴미디어 과학기술 등이 서로 소통하는 학제간 융합교육을 통해 전인적 예술인을 양성하자는 취지를 목표로 삼은 통섭교육이 논란의 핵심이라는 점은 의아하다.

국어사전은 통섭에 대해 ①사물에 널리 통함 ②서로 사귀어 오감으로 정의한다.

그 사전적 의미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염두에 둘 경우 예술에서의 통섭은 단순한 예술실기의 전문가 양성과는 다른 가치를 지닐 것이다.

이문열이 발표해 1992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단편소설 '시인과 도둑'은 김삿갓을 매개로 문학이 현실 변혁의 효율적인 도구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과연 문학을 포함한 예술이 현실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 텐가.

게다가 '무기의 그늘'과 '장길산', '삼포가는 길' 외에 최근 '바리데기'와 '개밥바라기별' 등의 작품으로 신화의 세계에 천착하는 소설가 황석영도 '현실'에서의 문제로 시시비비가 벌어지고 있으니 아무래도 예술가는 현실과 유리될 수 없는 입장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아무튼 시인이 총장이 되고, 총장이 다시 시인이 되기도 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다만 '(전략)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심열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하략)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中>는 말처럼 돌아가는 그 길이 왠지 낯설지 않음은 단지 5월에 내리는 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다시 계절의 한복판에서 작품이 아닌 현실에 자꾸만 토악질을 해대는 우리 시대의 대표작가 황지우, 황석영, 그리고 김지하까지의 모습들이 하물며 초라하다.

나는 오늘 비오는 5월 선술집이 그리울 것이고, 꽃집 앞에서 얇은 주머니를 뒤적이며 부부의 날을 애써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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