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천안 양령리 향나무
32. 천안 양령리 향나무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2.12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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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천연기념물 그 천혜의 비상
세갈래 갈라진 가지마다 800년 세월의 香 그대로

<천연기념물 제427호 2000년 12월8일 지정>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향나무는 안성천의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양령리 마을의 동편에 있다. 농가 담장 옆에서 자라는 나무는 수령이 약 800년으로 추정되며 굵은 외줄기가 나무 중간부터 3줄기로 크게 갈라져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동제를 지낼 만큼 마을의 수호목으로 사랑받았다.

향나무를 찾으려고 양령리 마을로 들어섰을 때 주변은 넓은 들이 하나 가득 펼쳐졌다. 논과 논두렁이 이어진 너른 평야에는 인가라곤 뜸뜸이 들녘에 꽂아놓은 듯한 집 몇 채뿐이었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마을은 한산했다. 마을에서 어렵게 만난 할머니께 향나무가 어디 있냐고 여쭙자 툭툭한 충청도 사투리로 길을 알려 주셨다.

"저기루 돌아가면 파란 지붕 있는 집이 나와. 거기에 있어. 나무가 오래되어서 나라에서 보호한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심어졌는지는 모르지. 말로는 큰 홍수가 났을 때 떠내려 왔다고는 해."

할머니의 말씀대로 몇 안 되는 집을 돌아가자 농가 담장 옆에 불쑥 솟아 있는 향나무가 보였다. 은행나무 옆에서 살짝 비틀려 자란 나무는 멀리서도 여성의 자태가 흠씬 느껴졌다. 여기에 둥글게 부채모양으로 올라간 줄기와 잎에서는 나무의 연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나무를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섰을 땐 주변에 배추밭과 비닐하우스, 담장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노거수의 위엄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구나 관람거리조차 확보되지 않아선지 끈으로 된 울타리와 안내판이 전부였다. 지금껏 보아온 천연기념물보다 열악한 주변환경이었다.

이처럼 좋은 여건이 아님에도 나무가 사람 가까이에서 자라게 된 데는 약 1200년 전에 대홍수로 떠내려온 것이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물에 떠내려 온 후 마을 한가운데 자라기 시작한 나무는 마을 주민과 끈끈한 연을 맺게 된다. 특히 자식을 못 낳는 여인이 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낳는다거나, 제를 드려 풍년을 기원한 이야기는 나무를 건드리면 마을이 편치 않다는 속설로 이어지며 마을 수호목으로 자리 잡았다.

비록 이러한 속설은 나무의 수령과 무관하지만, 경기도와 충청도를 경계 짓고 있는 안양천이 인근에 있는 것을 보면 농경사회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무의 전설에서 알 수 있듯 물이 준 나무를 소중히 가꿈으로써 물의 범람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홍수로 한 해 농사가 망치지 않도록 마을 사람들이 풍년과 안녕을 기원했던 수호목이었던 셈이다.

요즘은 관상수로 많이 심겨지곤 있지만 오래된 향나무들 대부분이 향교나 서원에서 관찰되는 데 반해 양령리 향나무는 농가에 터를 잡고 있는 점이 특이했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나무라설까, 마을 주민들에게 나무의 여건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사람 사는 곳에 바짝 붙어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어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이 2000년인데, 800년 전부터 이렇게 마을 주민들과 살아온 나무이다 보니 지금도 농가 옆에서 자라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러면서도 사람과 가까이 있어 나무가 피해당하는 일이 되풀이 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한다.



"60년 전에는 민가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나뭇가지도 불에 탔습니다. 가지가 잘려나간 것도 그 때문인데 아무래도 사람 사는 곳에 자라다 보니 재난이 가장 염려됩니다. 갖은 풍상에도 다른 향나무에 비해 곧게 자라주어 고맙지요."

골골이 갈라지며 실핏줄처럼 울퉁불퉁한 수피를 드러내고 있는 가지들. 중간에 잘려나간 줄기도 보이고 수술한 흔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도 한결같은 마을 분들의 마음 때문인지 주변과는 아랑곳없이 나무는 꿋꿋하게 하늘을 향해 자라 있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나무의 주변이 달라지곤 있지만 800년이란 나이와는 달리 건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전경아 천안시청 문화재 담당자는 "농가가 조성되며 자란 향나무는 마을의 소유로 되어 있다"면서 "주변의 토지매입은 경제적으로나 주변 농가의 사정으로 어려운 실정으로 현재는 잔가지를 쳐준다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농촌이다 보니 수호적인 의미로 향나무가 모셔져 왔다"며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나가면서 인구는 줄어들고 있지만 현재 20여 가구가 양령리에서 향나무와 함께 터전을 삼아 살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무는 오랜 시간 사람들 곁에 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남긴다. 사람은 떠나도 사람의 빈자리를 이야기로 이어주며 세월을 담아내는 나무의 숨결은 그래서 살아 있는 전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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