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보령시 외연도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136호 1962년 12월3일 지정>
28. 보령시 외연도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136호 1962년 12월3일 지정>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1.0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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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천연기념물 그 천혜의 비상
자연의 태고적 신비 간직한 '무릉島원'

충남 보령시에 속해 있는 섬 외연도에는 우리나라 남서부 섬의 식물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상록수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마을 뒤쪽 능선을 따라 작은 산을 이룬 상록수림은 수령이 오래된 낙엽수와 상록수가 섞여 자라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특히 사랑나무라고 불리는 동백나무 연리목과 20m가 넘는 팽나무, 팽나무를 감싸고 자란 대형 보리밥나무 등은 외연도상록수림의 숨은 보석이다.

바다와 섬으로 떠나는 겨울여행은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설렘을 안겨준다. 더구나 하루에 한 번밖에 왕래하지 않는 뱃길은 도시를 벗어나 차단된 세계로 떠난다는 들뜬 생각에 사로잡히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외연도상록수림 탐방을 계획하며 현지와 연락을 취할 때 마을 주민 김계덕씨(42)는 "오늘 날이 좋아도 내일 갑자기 바람이 불어 배가 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멀리서 오는데 외연도에 들어와도 나가지 못할 경우가 있으니 낭패 보지 말고 봄에 오라"고 권했다. 하지만 짜여진 일정을 미루지 못해 되돌아올 길을 염두에 두고 이른 아침 서둘러 대천항구로 떠났다. 다행히 바다는 잦아든 파도로 맞이해줘 외딴섬 외연도로 무사히 출항할 수 있었다.

대천항에서 출발한 배는 사슴처럼 생겼다는 녹도와 활처럼 휘어진 해변과 은백색 모래로 유명한 호도를 거친 후에 외연도에 닿았다. 육지와 멀어질수록 높아지는 파고를 헤치며 2시간여 만에 도착했다. 그렇게 마주한 외연도는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 세워진 천혜의 요새처럼 주변에 몇 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신비한 자태를 드러냈다.

투명하고 파란 하늘을 이고 있는 해안가 집들은 즐비하게 정박해 있는 어선과 함께 평화로운 어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섬에는 봉화산과 망재산이 마을을 감싸며 듬직한 바람막이가 되었고, 그 사이로 울창한 상록수림이 외연도의 전경을 더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었다.

외연도상록수림은 외연초등학교 옆에 있어 찾기가 쉬웠다. 바다를 등지고 돌계단을 50m 오르니 잎을 다 떨어뜨린 채 시린 빛으로 서 있는 팽나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철제 출입문을 열고 숲으로 들자 한 발 내디뎠을 뿐인데도 하늘이 어둑해졌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외연도였지만 이곳에선 바다는커녕 빠끔한 하늘도 허용치 않을 만큼 거대한 수목들로 가득했다. 마치 원시림에 들어선 듯 나무는 제 무게를 못 이긴 듯 쓰러져 있고, 세월의 위용을 보여주려는 듯 아름드리나무가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올라갔다.

그런가 하면 500년 이상 된 동백나무들이 붉은 꽃을 피우고 동박새를 부르고 있었다. 동백나무 중에는 사랑나무라고 불리는 연리목도 자라고 있다. 서로 다른 줄기에서 자란 가지가 틈새도 없이 하나로 이어져 있어 운명적 사랑을 보여준다. 또 상록수림 중앙에는 서낭당이 있는데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 주민이 모여 소를 잡아 풍어제와 당제를 지낸다. 오랜 세월속에서 상록수림이 훼손되지 않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데는 당산의 서낭림으로 잘 보호되었기 때문이다.

토박이로 마을을 지키고 있는 김계덕씨는 "정월 대보름이면 황소를 잡아 제를 지낸다"고 말하고 "이때 당주와 10여명의 제사꾼을 뽑아 일주일 동안 준비하면서 여자들의 출입을 일절 금지하고 있다"며 당제에 대해 들려줬다.

어릴 적 숲이 놀이터였다는 김씨는 상록수림에 대한 추억도 많다. "나무들이 크다 보니 그네도 뛰고 칼싸움도 하고, 배고프면 팽나무 열매랑 주먹만한 멍이라는 열매도 따 먹곤 했다"는 그는 "한 학년에 25명 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전교생이 31명으로 많이 줄었다"며 10년 전만 해도 600여 명이던 주민이 지금은 절반도 안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렇게 숲을 뛰어놀던 친구들도 하나 둘 육지로 떠났다고한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이 도시로 떠난 섬에선 자연은 고마운 친구이기도 하다.

"자연을 즐길 줄 알아야 외연도에서 살 수 있다"는 김씨는 "숲에 들어가면 하늘이 안 보여요. 바다라 습하다 보니 여름에 모기가 많은 게 흠이지만 팽나무, 동백나무, 삼나무, 새소리, 매미 소리가 살아 있으니 상록수림이 없었다면 삭막했을 거예요"라며 순박한 웃음을 지었다.

외연도에는 상록수림 외에 몽돌이 파도소리를 품으며 차르르 맑은소리를 내는 명금해변도 일품이다. 그리고 봉화산 정상에서 주변 무인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바다 풍경과 섬으로 떨어지는 낙조는 외연도가 품은 진주나 다름없다. 도시가 일상의 편리를 준다면, 섬은 자연의 비경을 선물로 건네주고 있었다.

하지만 자연의 경이로움은 때론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드러낸다. 평생 바다를 친구삼아 살아온 김계덕씨는 "겨울에 외연도를 오려면 하늘이 도와야 가능하다"며 "함부로 올 수 없는 곳이 외연도"라는 말로 자연의 외경스러움을 전해줬다.

밤이 되자 섬은 칠흙같은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간혹 켜져있는 전등은 폭풍이 몰아칠 것 같은 하늘빛에 묻혀 희미해졌다. 그렇게 낯선 섬에서 하루를 묵고 거대한 숲의 비밀처럼 차단된 세계로의 여행을 마칠수 있었다. 섬을 떠나오며 멀어져 가는 외연도는 은빛 바닷물결 위를 떠도는 거대한 함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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