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밤
시월의 마지막 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0.31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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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로 시작되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은 1980년대에 발표된 노래임에도 지금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가수 이용은 '국풍 81'이라는 해괴망측한 정부주도의 축제를 통해 대중에게 선보였다. 1980년대의 우울한 와중에 열린 정부주도의 문화축제는 미스유니버시아드를 비롯해 국풍81, 아시안게임, 서울올림픽 등 부지기수다. 물론 이러한 축제가 선진국을 향한 노둣돌이 됐으며, 국민의 기를 살리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던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정부주도의 축제에 내포되어 있는 저의는 없는 것인지, 또 이런 시도가 국민들의 자발적 동력을 유도하고, 이를 토대로 하는 사회공동체적 미래지향성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반드시 되짚어야 할 것이다.

대중가요는 시대를 반영한다.

'시월의 마지막 밤'을 노래한 '잊혀진 계절'이나 가수 이용을 출세시킨 '바람이려오'는 그 시절 김범룡이 부른 '바람 바람 바람'과 묘한 상관관계를 유지한다. 그 바람이 그저 불어오는 '바람'인지, 아니면 희망과 기대로서의 '바람'인지는 듣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잊혀진 계절'의 '시월의 밤'을 궁정동의 그날 밤으로 변형시켜 박정희와 독재를 연상시키던 일들은 이러한 개개인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

시대는 변하였고, 우리는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그 사이 우리는 다시 '바람'의 홍수를 만나고 있다. 혜원 신윤복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고구려 유리왕을 통한 강력한 고구려의 미래를 복원하는 드라마 '바람의 나라'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그런 문화적 복고의 현상은 여성 그룹 원더걸스의 '노바디(Nobody)'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1960년대 복고풍의 의상과 헤어디자인, 그리고 적절한 안무는 가수가 아닌 기획자로서의 박진영의 가치와 함께 '텔미' 이후 원더걸스의 선풍적 인기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러한 문화적 복고현상이 위기의 경제상황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비롯된 경제난국은 망령처럼 1930년대의 케인즈를 부활시키고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케인즈가 부활하는 것은 소위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의 자율적 판단에 대한 금융시장의 한계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단적으로는 금융시장에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및 조정과 타협 주도로 말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경제에서의 흐름의 유연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가 될 것이다.

금융의 원천은 화폐이고 화폐는 가상의 재화이므로 탈생산적 구조를 지니는 속성을 띠게 된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금융시장 개입이 됐든 아니면 시장의 자율적 흐름에 따라 경제 위기가 극복되든 간에 살팍하기만 한 현재의 상황이 하루 빨리 개선되기를 바라는 서민들의 바람일 것이다.

시월이 어김없이 가고 있다.

경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어려워질 것인가에 대한 조바심으로 보내야만 하는 이 가을이 서럽다.

'바람의 화원'을 통해 혜원 신윤복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다섯 여자의 발랄함이 한껏 녹아있는 '노바디(Nobody)'의 동영상에 취해 그저 훈훈한 문화의 향기에 빠져들고 싶은 날들이다.

그리고 어느 새 떨어지기 시작한 낙엽에 가슴 철렁하던 낭만으로 '시월의 마지막 밤'을 노래하고 싶은데, 자꾸만 거슬러 올라가는 경제 사정은 우리를 그저 궁핍하게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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