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힘, 이야기의 힘
배우의 힘, 이야기의 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0.17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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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몇 가지가 있다.

대개 신문을 비롯한 언론매체의 영화평이나 입소문에 의존해 영화관을 찾게 되는데 이 경우는 전적으로 대중성이 우선되게 마련이다.

이 밖에도 자기가 평소 선호하는 장르이거나 눈여겨 보고 있는 감독, 또 좋아하는 배우를 영화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선택은 자기주관이 상당히 개입될 수밖에 없다.

전도연과 하정우가 나온 영화 '멋진 하루'는 두 배우의 섬세한 연기에 이끌린 영화다.

이윤기 감독이 2년 만에 선보인 영화 '멋진 하루'는 '밀양'과 '너는 내 운명' 등으로 이미 절정의 연기력을 과시하고 있는 전도연의 연기로 우선 눈길을 끈다.

그러나 하정우 역시 '추격자'로 극찬을 받은 바 있어 두 사람의 연기의 대결 구도이거나 혹은 연기의 조화가 사뭇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영화 '멋진 하루'는 대단히 시니컬하다. 한 때 연인이었던 남녀가 350만원의 부채를 매개로 다시 만난다는 설정 자체가 척박한 자본주의의 질곡을 연상케 하고, 그 짙은 그늘에서 금융위기를 떠올리게 되면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잔잔하게 투영되는 서울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구석이 처연하고, 음악 역시 무미건조한 듯 하나 그 우울한 조합이 의외로 묘한 여운이 되어 길게 반추된다.

'멋진 하루'는 전도연이라는 고수보다는 하정우에 의해 더 빛이 난다. 때로는 지나치게 능청스럽고, 어찌보면 순진하기 그지없는 것 같은 변화무쌍함은 이 배우를 연민의 대상으로 삼기가 쉽다.

당연히 하루 동안의 궤적을 그린 영화라 주연배우는 단 한가지의 의상으로 시종일관한다.

영화 연기에서 이처럼 분장이나 의상에 의존하지 않고 배우 자체가 스스로 뿜어내는 연기력만으로 캐릭터를 소화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두 배우 전도연과 하정우는 용하게 소화를 하고 있고, 그리하여 배우로서의 역량을 관객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처럼 자상한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배우가 영화를 선택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는 결정을 더욱 믿음직스럽게 한다.

지금 이런 문화산업의 시대에 배우는 분명히 큰 자산이다.

청주에서 개최되는 문화의 달 행사에 배용준이 온다는 사실 하나만이 부각되면서 본말이 전도된다고 해도 나는 배우의 힘을 믿는다.

대한민국의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행사에 바다건너 일본에서 배용준의 열성 팬들 수백명이 찾아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주제인 '소통'은 이미 국제성을 확보한 것 아닌가.

하물며 그로 인해 우리 지역 한 호텔은 생각지도 않은 특수를 누리게 되고 태왕사신기를 찍은 장소인 청주 상당산성이 명소로 부각되게 됐으니 이것만으로도 문화의 힘이 새삼스러운 것 아닌가.

다시 '멋진 하루'로 돌아가 보자.

이 영화, 원작은 다이라 아즈코가 쓴 일본의 단편소설이다.

'올드보이'와 '미녀는 괴로워' 등의 히트 영화 역시 원작은 일본 것이다.

하긴 이미 충무로 뿐만 아니라 출판계조차 일본의 작품들을 입도선매하고 있다고 하니, 문화의 달에 배용준과 함께 훈장을 받는 작고시인 김영랑이 차마 우울하다.

멋진 배우를 변함없이 믿으며 영화관을 찾는 일은 그 영화의 근간이 되는 이야기의 든든한 토대가 선행지수다.

'소통'을 말하는 문화의 달 행사에서 복원되는 청주 줄다리기의 역사적 전통 만큼이나 이야기에 목말라 있다.

언제까지 영랑이 노래한 '모란이 피기까지'를 기다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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