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김·정·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0.14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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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김정일에 대해 알려진 것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요즘에야 조금(?) 덜 하지만 반드시 망해야 할 체제의 수괴 쯤으로 인식하던 지난날의 학습 때문이다. 적어도 성인들에겐 성격이 괴팍하고 주색을 밝히는가 하면, 선전 선동의 귀재에다 정적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희대의 폭군으로 각인됐다.

그래서 그런지 김정일 하면 우선 연상되는 단어는 매우 단편적이면서도 자극적이다. 파티 마니아, 기쁨조, 스피드 광, 복수의 화신, 심지어 성도착자라는 용어까지 수반된다. 황장엽은 김정일을 이렇게 평가했다. '머리는 빨리 돌아가는데 깊이가 없다. 차분히 앉아서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인물은 못되지만 대신 사람을 꿰뚫고 장악하는 능력은 뛰어나다'.

이런 것들이 사실인지는 지금으로선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범상한 성격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비록 아버지(김일성)의 후광이 있었다 하더라도 30대 초반에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대를 이어 무려 14년 동안이나 흔들림없이 세계 무대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김정일이 다시 주가를 한껏 올리고 있다.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김정일의 뒤를 좇느라 연일 안달이다. 지난달 9일 정권 창건 60주년에 이어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기념일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자 그의 은둔에 관한 비밀캐기 경쟁이 치열하다. 그가 이미 죽었든 혹은 중병으로 누워있든 어차피 '은둔'은 지금까지 김정일이 즐겨 구사하던 생존술이었다. 때문에 지금처럼 여론이나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 것은 생뚱맞다.

은둔은 비록 비정상적이지만 국가통치나 조직관리에 있어 아주 중요한 기법중의 하나다. 비밀스럽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에게 신비감을 안긴다. 은둔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바로 이런 신비감을 조장하는 극적인 분위기의 연출이다. 한동안 숨어 있다가 짜잔∼하고 나타나면 효과는 더 커진다. 김정일의 '벼랑끝 전술'은 바로 이에 근거한다.

한참동안 미동을 않다가 느닷없이 미사일을 쏘거나 도발을 하고 나오면 그 배경엔 반드시 정치적 목적이 있다. 지난번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도 이런 맥락이다. 북한은 이 사건에 대해 정당방위 내지 우발적이라고 강변하지만 언젠가는 '철저하게 계산된 행위'였음이 밝혀질 것이다. 당시 김정일은 이명박 정권 5년을 내다보고 상대를 떠 보기 위한 가장 극적인 실험을 감행했을지도 모른다.

은둔 전략은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회사 최고 경영자가 공용화장실을 기피해 직원들과 일정한 거리를 둔다든가, 명망가일수록 대외 행사나 초청 등에 쉽게 나타나지 않는 것 등이다. 자주 모습을 나타내거나 자주 부딪치게 되면 아무래도 상대는 쉽게 여기게 마련이다. 삼성의 이건희가 대중 앞에 잘 나타나지 않는 배경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미 그는 은둔의 CEO라는 닉네임을 얻지 않았는가.

문제는 이런 은둔에 기대는 리더십은 결코 생명력이 길지 않다는 점이다. 조직의 상시적인 시스템이 아닌 특정인의 물리적 악력이 리더십의 원천이었기 때문에 막상 그 특정인의 유고시엔 혼란은 필연적이다. 지금 우리가 걱정할 것은 김정일이 죽었느냐, 살았느냐가 아니라 바로 이 점인 것이다. 만약 그의 신상에 무슨 일이 있다면, 북한의 동요와 그 파장에 대비해야 되는데 현재 이를 위한 준비는 한계에 있다. 지금의 남북경색이라면 앞으로 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국제무대에서 우리가 먼저 발언할 여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숨통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교롭게도 김정일은 자신의 후계자가 될 아들들에 대해서도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은둔을 학습시켰다. 때문에 지금 많은 학자들이 김정남-김정철-김정운 등 세 아들을 저울질하며 후계 구도를 점치고 있지만, 확신하건대 그런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북한이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역사적으로 은둔의 리더십을 구사한 독재자가 통치의 대를 이은 것은 본인이 생생히, 그것도 힘있게 살아 있을 때만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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