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의 죽음
최진실의 죽음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0.07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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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독설로 유명한 도올 김용옥이 20여년전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아주 도발적인 책을 냈다. 당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이 책은 물론 여성성(femininity)에 시종일관 천착하면서도 궁극적으론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다뤘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 때 나름의 고민을 안겼던 한가지 화두는 아직도 생생하다. 여자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여자의 관점으로 관찰해야 하고 이를 통해서만이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많은 여성 운동가들이 이러한 여성의 특성을 거부한 나머지 사회병리적 현상만을 고집하여 여성문제 자체의 본질을 파헤치지 못한다는… 대략 이런 것이다.

여성은 여성으로 해석해야 하며 이것이 선결돼야 인간, 인류의 근본적 문제까지 고민한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이는 요즘 여성운동의 최대 모토인 성 인지적 접근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여성을 여성으로 바라보는 것,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성에 대해 야만적이다.

최진실이 죽었다. 일찍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처럼 안타까움을 안긴 죽음도 없었다. 최진실의 마지막 모습을 TV로 지켜보면서 끝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은 것은 그녀가 메모나 개인 홈피에 자주 남겼다는 단발성의 단어들이다. 외로움, 고독, 주변사람들에 대한 섭섭함, 때로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순간에서도 사회로부터의 격리, 박탈감을 호소한 그 상실감에 끝없는 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본인의 말대로 최진실의 삶은 평탄치 못했다. 홀어머니와 살면서 끼니를 걱정했던 어린시절을 지나 어느날 대중의 절대적 사랑을 받는 시대의 아이콘이 됐지만, 다시 추락과 부활을 거듭하는 굴곡의 삶을 살아야 했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면서도 영하 40도의 혹한을 뚫고 백혈병 환자들과 희말라야 등반을 마치고서야 비로소 "삶에 대한 열정을 느꼈다"고 고백할 정도로 잡초같은 생명력을 지닌 그녀였지만 막판 처절한 연기에서 엿보였던'충동적 성향의 감성'은 급기야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누가 최진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에게 자살을 충동시킨 요인은 복합적이다. 악플도 될 수 있고, 최고 정상에 서는 순간 오히려 추락을 조바심 낼 정도로 경쟁과 성장논리에만 매몰된 현재의 무모한 사회적 트렌드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김용옥의 선견지명처럼 우리사회가 여성을 여성으로 바라보지 않은 것이 결정적이다. 결혼 실패의 중압감, 그녀 주변을 맴돈 숱한 악성 루머와 음해성 사건들은 그녀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특히 가혹했다. 그녀를 여성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사회적 사디즘의 대상자로 대못질한 것이다.

똑같이 간음했는데도 남자들은 파직되거나 귀양가는 것에 그치지만 여자들은 사형에 처해지고, 남편을 따라 죽어야 열부로 칭송받는가 하면, 그저 음란하다는 소문만으로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때려죽이고 오라버니가 동생을 참살하던 조선여인의 잔혹사가 여전히 살아 숨쉰다면 부인하겠는가.

최진실은 연기의 천재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한 시대를 풍미하거나 앞서간 여성들은 불행했다. 윤심덕, 나혜석이 그랬고 천재 전혜린도 그렇다. 남들이 감히 꿈도 못꾸던 시절, 자유의사에 따라 사랑을 하며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로 각광받던 윤심덕은 현해탄에 몸을 던졌고, 부유한 관료의 딸로 태어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화가이자 소설가로 신여성의 상징이던 나혜석은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말년엔 경제적 궁핍으로 거리를 전전하다가 행려병자로 숨졌다.

불꽃같은 삶을 살며 자기의 모든 것을 지식과 정열과 사랑에 쏟아 붓던 전혜린은 불과 31세의 나이에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이들을 죽음으로 이끈 것은 하나같이 여성을 여성으로 바라보지 않던 당시 사회의 편견과 학대였다.

최진실을 죽게 한 것은 결코 악플이 아니다. 이런 악플을 양산시킨 우리 사회에 책임이 더 크다. 그런데도 정부는 누리꾼들을 때려잡겠다고 호들갑이다. 문제의식에 접근하는 방식이 항상 이런 식이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무심하다. 삶이 아무리 절박해도 그렇게 황망히 갈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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