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11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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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교의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김 익 교 <전 언론인>

절기로는 가을이라지만 날씨는 아직 한낮에 30도를 오르 내리는 여름 끝자락입니다.

그래도 한가위를 잉태한 달은 차올라 만삭이 다 되어갑니다. 사흘만 있으면 한가위 추석입니다.

경기가 어떻고 연휴가 짧고 간에 추석은 추석인가 봅니다. 마을에 택배차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고 만나는 이웃들의 머리 모양새가 하나같이 산뜻합니다. 명절을 앞두고 이발들을 했기 때문이지요.

농촌지역 각 마을 입구에는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등 출향민들을 반기는 현수막이 걸려 명절 분위기를 띄우고 있습니다. 또 마을마다 주민들이 모여 추석맞이 주변 대청소도 끝냈습니다.

벌써부터 이것저것 싸보낼 것 챙겨 놓고 아들, 딸 손주들을 기다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발걸음에 생동감이 묻어 납니다. 이런걸로 보면 추석이 오는지 가는지 밋밋한 도시보다는 농촌이 사는 맛이 나고 살갑습니다.

바람을 가르고 지나가는 고속 열차 소리가 오늘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열차손님 대부분은 귀성객일 것이고, 각자 마다 고향을 찾는 설렘도 있을 테고, 마지못해 가는 불만도, 각박한 도시생활에 찌들은 우울함 등 수많은 사연을 기다랗게 싣고 쏜살같이 내달립니다.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

아내도 일주일전부터 하나씩 둘씩 챙기면서 차례준비를 합니다. 그 모습에서 맏며느리의 자리가 느껴지고 알게 모르게 드나드는 심란함은 이심전심인 것 같습니다.

이곳 방아다리로 올 때 막 대학에 입학한 둘째가 결혼날짜를 잡았습니다. 그 어려운 취업난 속에서도 졸업과 동시에 은행에 입사해 그렇게 기특하더니 이제 둥지를 떠납니다. 그래서 이번 추석이 더욱 심란한가 봅니다.

오늘 점심에 명절 앞두고 식사나 같이 하자는 고등학교 동기들을 만났습니다. 한때 민완형사로 이름을 날렸던 명퇴한지 두달된 친구는 힘이 빠졌고, 아직 공직생활 1년정도 남은 친구는 건강검진에 이상이 나왔다고 침울해 합니다. 또 자영업을 하면서 늘상 친구들을 정스럽게 대하는 친구는 기복없는 생활이 힘이 들고 권태로운가 봅니다.

이런저런 얘기중에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건강이고 눈앞에 닥친 노후를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가가 대화의 중심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 우리도 이제 내일 모레면 …" 말끝을 흐립니다. 회갑이란 얘기지요. 벌써 말입니다.

어제 명절 때마다 챙겨 주는 친구로부터 또 선물을 받았습니다. 제대로 한번 답례도 못하고 이것저것 받기만 하니 염치가 없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 나 챙기기도 급급한 세태에 주변을 챙겨주는 고마운 친구입니다.

이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고속 열차가 수없이 오고 갑니다.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타는 삯이 비싼 저 열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형편이 좀 나은 분들일 것이라고. 주변에는 명절때가 더 외롭고, 슬프고 고통스럽기까지한 이웃들이 있습니다. 이런 소외된 주변을 돌아 볼 수 있는 내가 되어 봅시다. 이번 추석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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