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박한 미소 머금은 용정동 돌장승
순박한 미소 머금은 용정동 돌장승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04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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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체험 문화답사기
한 윤 경 <역사논술 지도교사>

어린 시절 시골집 할머니 댁에 가면 마을 입구에 떡 하니 서있는 장승을 보고는 무서워 마구 달려가던 적이 있어요. 마을로 들어오는 각종 악귀나 잡귀를 내쫓기 위해 세운 것이란 걸 커서 알게 되면서 그 무서운 얼굴이 정겹게 느껴졌지요.

나무나 돌을 깎아 해학적인 모습을 만든 장승이나, 긴 장대 꼭대기에 오리와 같은 새를 얹어 만든 솟대 그리고 커다란 돌을 세워 놓은 입석은 마을 어귀에 세워져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 질병, 재앙을 막기 위한 일종의 민간신앙의 표시지요. 미신타파를 비롯해 각종 물질문명이 들어오고, 의술이 발달하면서 농촌의 기본적 민간 신앙의 구조가 무너지면서 그 많던 장승이나 솟대, 입석들을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됐죠.

용정동 이정골에는 마을 사람들이 위하는 돌장승이 있어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인 이 돌장승의 정식 명칭은 순치명석불입상인데요, 그 이유는 장승의 아랫부분에 '순치 9년 11월 16일입'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조선 효종 3년에 만들어졌다는 정확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에요. 위로 머리만 조각이 되어 있어 마치 장승처럼 보이지만, 이마에 커다한 백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불쌍히 여겨 석불입상이라고도 부르지요.

백호는 흰 호랑이가 아니라 부처님의 눈썹 사이에 난 흰 터럭을 말합니다. 이것은 온 세상에 광명을 비춘다고 하는데 보통 불상에는 이곳에 보석을 박아 표시하기도 하죠. 이 돌장승은 인상적인 이마의 백호 외에도 눈두덩을 표현하면서 내려 뜬 눈, 반달모양으로 새겨진 입술 등 전체적으로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짓게 만들죠. 그리고 두 팔은 얼굴에 잇달아 수평되게 나타내었는데, 마치 두 손을 모아 턱밑에 괴고 있는 것 같이 보여요.

그렇다고 불상으로 보기에도 부족한 것이 많아요. 양쪽의 귀는 조각되지 않았고, 목은 짧으며 흔히 불상의 목에 있는 세 개의 줄인 삼도도 없고, 부처님의 옷인 법의도 모두 생략되어 있어요. 이것으로 봐서 사찰에 모신 예배불이기 보다는 마을의 수호신의 기능을 하는 민간의 불상, 다시 말해 마을을 지키는 장승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맞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선돌멩이, 수구맥이, 또는 돌장승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실제로 근처에 장승배기라는 마을이 있었던 것도 이 돌장승에서 연유된 것이므로 돌장승이 더 어울리는 이름이죠.

이 돌장승은 지금 있는 곳보다 위쪽인 개울 상류에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 해 큰물을 만나 떠내려가서 하류에 박혀 있었는데, 지금으로부터 30년쯤 전에 모습이 드러나서 마을사람들이 줄을 매달아 끌어내어 지금 자리에 세웠지요. 이 동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어릴 적에 어른들이 "선돌멩이가 어디 갔나 모르겠다"하고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해요.

옛날 무심천에 남석교를 놓으려고 여기저기서 커다란 돌을 모으고 있었는데 힘센 장사들이 이 돌을 메고 가다가 다리가 다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더 이상 돌이 필요없게 되자

"에이, 넌 여기서 선돌이나 해라" 하며 박아놓았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마을에 전해오고 있어요. 돌장승 건너편 쪽으로 소나무로 만든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 장승도 있었는데, 1970년대 초반에 없어졌다고 해요.

지금도 해마다 마을사람의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드리고 있어요. 영원히 든든한 마을 수호신이 되어줄 돌장승도 오래도록 건강하라고 기도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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