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 문백전선 이상있다
274.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8.04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궁보무사<589>
글 리징 이 상 훈

염치 어르신, 매성과 평기 대신이 일을 꾸밉니다"

장산이 놀라 뒤를 돌아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까 그 주모(酒母)였다. 그녀는 지금 뭔가 단단히 작정을 하고 온 듯 양 팔을 걷어붙인 채 장산을 무섭게 째려보며 다음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꽤나 점잖은 분 같은데,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하우 값은 치러주셔야지."

"술값은 저 친구(대정)가 낼 것이요."

"어머! 술값 따위가 문제인가요 댁이 우리 애를 데리고 논 것도 생각해 주셔야지."

"어허! 난 위아래로 꾹꾹 눌러대지도 않았고 억지로 뭘 메워보려고 하지도 않았소이다."

"흥! 우리 애한테서 댁이 옷을 도로 빼앗는답시고 요리조리 눈요기를 해가며 은근 슬쩍 주물러댄 것은 계산에 안 넣나요 댁이 저 분(대정)과 어떤 사이인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노신 값만큼은 깔끔하게 치러야할 거 아니에요 우린 뭐 땅 파서 술장사를 한답디까"

주모는 여전히 노기등등한 목소리로 장산을 째려보며 말했다.

"허, 이거 참."

장산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그러나 이런 곳에서 늙은 여자와 말다툼을 계속 해봤자 자기에게 이로울 것이 전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 어차피 줘야 하는 거라면 빨리 줘버리고 끝을 내버리자. 오늘 재수 없이 뭐 한 번 찐하게 밟은 셈 치면 되지 뭐.'

장산은 빈 입맛을 쩝쩝 다시며 갖고 있던 은전 삼십량을 소매 춤에서 꺼내들었다. 그러자 주모는 잽싸게 그것을 잡아채가지고 자기 치마 안에 통째로 둘둘 말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이상스런 변태 짓거리만큼은 가급적 삼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비록 남자들 비위를 맞추고 몸과 웃음을 파는 여자들이긴 하지만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고 수줍음도 탈 줄 아는 여자들이라고요. 꾹 참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남자옷 여자옷을 서로 바꿔 입어가며 온갖 주접을 다 떨어대는 것에는 아주 딱 질색들이라고요."

주모는 이렇게 말을 마치자마자 도망치듯 주방 쪽으로 쪼르르 달려가 버렸다.

"어 어"

장산은 갖고 있던 은전 삼십량을 졸지에 빼앗기고 나자 참으로 황당해졌다.

'이거 참! 쫓아가서 저걸 다시 빼앗거나 거슬러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고.'

장산은 기분이 몹시 찝찝하긴 했지만 이를 해결할 만한 뾰족한 수가 없는지라 하는 수 없이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장산은 어서 빨리 나머지 금화 네개를 구해가지고 오라는 아내의 잔소리에 내내 시달리면서 잠을 자야했다.

다음날 아침 염치가 정장 차림을 하고 집 대문을 막 나서려는데 대흥이 불쑥 튀어나와 그 앞을 가로막아 섰다. 대강 눈치로 보건대 대흥은 염치를 직접 만나고자 새벽부터 대문 앞에서 죽치고 기다렸던 것 같았다.

"염치 어르신! 제 말 잘 들으십시오. 어젯밤 사촌 아우 대정이가 제게 직접 들려 준 말이온데, 매성 대신과 평기 대신이 이번 병천국 먹거리 행사때 염치 어르신의 안주인을 고의적으로 골탕을 먹이는 등 톡톡히 개망신을 주기 위해 모종의 일을 꾸미고 있다하옵니다."

"아니, 그, 그게 뭔 말이요"

염치가 깜짝 놀라며 대흥에게 다시 물었다.

"사정이 대강 이렇습니다요. 행사 그날, 염치 어르신의 안주인께서 손수 만드신 순대를 사람들이 먹어보는 족족 모조리 토하게 하거나 아주 맛이 없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대자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히 아우내 왕 내외분께서도 그걸 잡수시기가 거북하실 것 아닙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