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과 놈들에 대하여
놈과 놈들에 대하여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4.05.15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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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어릴 적 할아버지의 `요놈'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짓궂은 장난을 치거나 딴전을 피울 때 `요놈' 하셨는데 무섭기도 하고 놀라서 오금을 저리기도 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나 청년들이 위험한 장난을 하거나 싸움을 하면 귀신같이 나타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요놈들'하셨고 그러면 아이들은 혼비백산해 달아나고 청년들은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습니다.

할아버지 손에 들려있는 담뱃대와 지팡이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권위와 위엄에 압도되어서였습니다.

할아버지의 `요놈'과 `요놈들'은 미래세대를 사랑하는 훈육의 회초리였습니다.

각설하고 `놈'은 한자 `者'가 `놈 자'이듯 예로부터 `사람'을 의미하는 일상적인 언어였습니다.

노략질과 침략을 일삼던 일본인을 `왜놈' 중국인을 `되놈'이라고 욕하며 경계했고, 본데없고 행실이 나쁜 이를 쌍놈 잡놈 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적대 관계에 있거나 인간 같지 않은 자를 싸잡아 부르는 비하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상도 놈들'이니 `라도 놈들'이니 하는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언사를 함부로 하고, `좌파 놈들' `우파 놈들'하며 양극단으로 갈라져 으르렁거리는 놈들 세상이 되었으니 동방예의지국의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본분을 지키지 않고, 행실이 나쁘고,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고, 제 잇속 챙기기에 골몰하는 사람들을 `놈들'이라 부르는 건 봐줄만합니다.

국회의원 놈들, 판·검사 놈들, 의사 놈들, 공무원 놈들, 선생 놈들, 목사 놈들, 중놈들, 경찰 놈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놈들'이란 말 속에 도둑놈, 죽일 놈, 고루한 놈, 염치없는 놈 등의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그런 `놈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우리사회가 불건전하고 병들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그런 몹쓸 놈과 못된 놈들을 보고도 `요놈들'하며 꾸짖는 원로와 어른이 보이지 않아 씁쓸합니다. 나라와 사회에 잘못을 꾸짖는 원로와 어른이 없다는 건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하여 우리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놈'과 `놈들'을 소환해 액땜하듯 횡설수설합니다.

싸가지 없는 놈, 싹수없는 놈이 있습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없고 미래가 없는 놈이 많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가정교육의 부재와 공교육 부실의 산물입니다.

기는 놈, 뛰는 놈, 나는 놈이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이 천차만별하다는 것과 생존경쟁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비속어인데 세상에 숨은 고수들이 많고 많으니 나부대지 말고 겸손하게 살라는 촌설살인입니다.

난 놈, 든 놈, 된 놈이 있습니다.

능력이 출중한 뛰어난 이가 난 놈이고, 머리에 든 게 많은 유식한 이가 든 놈이며, 남을 배려하며 올곧게 사는 이가 된 놈 아니 된 사람입니다. 난 놈 든 놈보다 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희원입니다.

간사한 놈, 치사한 놈, 더러운 놈, 약은 놈, 딱한 놈이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퍼져있는 꼴불견들입니다.

나쁜 놈과 착한 놈, 못난 놈과 잘난 놈, 멍청한 놈과 똑똑한 놈, 망할 놈과 흥할 놈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불평등이 존재하지만 그래봤자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미친놈과 환장한 놈, 쓸개 빠진 놈과 얼빠진 놈이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놈들입니다. 특히 정치권에 이런 자들이 많아 사회가 혼탁하고 나라가 어지럽습니다.

개 같은 놈과 개보다 못한 놈이 있습니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염치없는 놈이 개 같은 놈이고, 주인도 몰라보고 나부대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이 개보다 못한 놈입니다.

놈들 타령을 하다 보니 나도 그렇고 그런 놈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꿈꿉니다. 놈과 놈들이 분이 되고 사람들이 되는 세상을.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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