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간다
날아간다
  •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 승인 2024.05.2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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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눈물이 울컥울컥 차오른다. 당연하다는 말이 당연해질 때까지 쏟아부어진 노력은 어떤 이의 입에서 한순간 뱉어진 구토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덩그러니 남은 사람들이 있다. 그 어떤 말도 위안이 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주워담을 수 없는 상황에 물 한 잔을 마셔도 목이 쓰고 밥 한술을 떠도 혀가 따가운 날들이 이어진다. 그저 버틸 뿐이다.

때로는 있는 사람이 더 가지려 하고, 아는 사람이 더한다는 흔하디 흔한 말이 당장 누군가 총구를 내 관자놀이에 대고 장전을 하는 순간만큼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아'를 말해도 `어'로 들리고 `나'를 말해도 `너'를 의미하는 아이러니한 순간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한지 생각에 생각을 쌓아도 답은 없다. 그저 끊이지 않고 들리는 소음을 참을 수밖에.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남의 생각도 옳을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놓친다. 너와 나의 목소리가 엉겨 붙는 그 순간에는 굳건한 신념으로 해야 할 말 한다지만, 우수수 떨어진 지저분한 아집의 잔재는 누가 치워야 할까. 결국 질척질척한 바닥을 맨발로 딛고서 언제 그렇게 큰소리를 냈냐는 듯이 이제는 모두가 입을 닫는다.

눈빛에는 절대로 내 손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굳건하고도 추잡한 결의가 가득하다.

인간관계가 단 한 순간도 쉬운 적은 없었지만, 이렇게 쉬지 않고 잊을만하면 누군가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저주할 또 다른 이유가 생기는 현실이 가끔은 놀랍기도 하다. 도대체 인간이 갈 수 있는 최악의 끝과 최선의 경계선은 어디 있는 걸까. `선'이란 게 있긴 한 걸까. 그저 사람의 내면에 언제든 증오를 싹 틔울 수 있는 다양한 씨앗이 태초부터 심어져 있는 건 아닐까. 그 옛날 순자가 말했던 `성악설'은 슬프게도 진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성선설'을 믿고 살았다. 내 인생의 일부를 검게 칠하고 여전히 깨끗이 지우지 못한 채 살아가게 한 이들을 웃는 얼굴로 용서하지는 않을지언정 이 모든 것에 전혀 연관이 없는 새로이 만난 사람들에게까지 매캐한 연기를 흩뿌리고 싶지는 않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사람 모두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친절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나에게 악의가 없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다. 사람은 누구나 선하고, 그 선함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친절하겠노라고. 내가 나이기에 나를 걷어찼던 그 모든 기억을 비웃으며 나는 사람이 선하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안타깝게도 그리 성공적이진 않았나 보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의견을 가볍게 무시하는 이들을 보며, 내 존엄을 지키고자 다른 이들의 머리끝부터 짓밟는 이들을 보며, 나와 내 아이들만 소중하고 너와 너의 아이들은 어떻게 되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이들을 보며 두 눈을 질끈 감고 돌아서도 불쑥불쑥 화가 차오른다. 악순환이다.

다스려지지 않는 이 분노는 가슴 깊은 곳에서 남모르게 똘똘 뭉쳐 평온했던 마음 밭에 타오르는 씨앗을 뿌린다. 사냥감을 찾으면 바로 싹을 틔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꽉 물고서. “엄마!” 하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웃음이 눈동자에 비치니 저 스스로 재가 되어 날아간다. 바람 따라 흩날리는 민들레 씨앗처럼, 다만 어디에도 다시 내려앉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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