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마디에
그 한마디에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4.05.15 16: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뒤따르는 남편의 그 한마디에 동작을 멈추었다. 그냥 두란다.

이제 막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뽑지 말라 한다.

가볍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생각해오던 남편의 모습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보이는 것 같아 놀라고 만 것이다. 아주 눈 깜박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붉은 신호등 앞에 서 있다가 파란 불이 켜지면서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상황이었다.

잡초는 살아남았다. 제법 몸을 키워내고 있는 모습이 예쁘기도 하다. 뽑으려드는 내 손길을 막아낸 후 보답이라도 하듯 더 싱싱하게 자라나 꽃망울까지 맺고 있다.

정말 티끌만한 생명도 제 할 일은 다 해내는 순리를 발견한 셈이다. 작은 우주에서부터 무한한 세상을 향하는 도전의 정신마저 보여주고 있었다.

봄이면 사방에서 여린 싹들이 물결을 이룬다.

그렇게 시작되는 생명의 색감들은 삶의 의욕을 표현하는 방법이 되고 있다.

남편도 그랬나보다. 아니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빠진 건강을 위해 보이지 않는 속앓이를 해왔음이 분명하다.

평소에 덤덤한 듯해도 작은 잡초 한 포기에서조차 소중함을 발견하며 본인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그냥 두라는 그 한마디가 내내 가슴을 휘 젖는다.

혈기 왕성할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특히 아내인 나에게 만큼은 배려와 여유를 보여주지 않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이던가. 나 또한 성격 탓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겪어온 그림자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기에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남편과 함께 걸어온 날들이 만만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그럭저럭 삶의 종점을 향해 느릿느릿 얘기 나누며 가는 중이다.

갑자기 주저앉아 거친 숨이라도 들이쉴 까봐 염려에 차서 서로가 돌아보는 습관에 젖어 있다.

자연스레 말수는 줄어들어 갔고 한 마디 말의 음색에서도 심중의 상태를 헤아릴 수 있게 된 시간이라고나 할까.

이러하니 부부란 얼마나 긴한 사이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지닌 생명은 귀하다.

비록 발끝에 가까운 잡초이지만 매일 드나드는 마당에서 눈 맞춤을 이어가게 만든다.

오히려 보란 듯이 꽃으로 화답 해오는 모습에서 볼거리가 늘어났다. 화초 키우는 셈 치자니 그리 불편한 일도 아니었다.

이제는 꽃 지고 쇠잔함에 들 때까지 그냥 두다가 정리를 할 참이다. 한 편 세상에서 섞이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화초인 듯해도 속내가 어여쁘지 못하고 잡초이지만 화초보다 더 곱고 아름다운 심성의 소유자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대문을 나서면서 얼마만큼 자라나고 있는지 관찰하기에 바쁘다. 제비꽃, 냉이 꽃, 민들레꽃이 앞 다투어 피어났다. 모두 고개를 들고는 웃고 있다. 더 큰 것을 바라기보다 내가 만족하고 느끼는 평화였다. 이번 봄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 지나가는 중이다. 이렇게 봄의 시계는 마음을 급하지 않도록 만들어 놓았으며 작은 생명일지라도 소중함을 알게 해 주었다. 가장 큰 수확은 남편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그냥 두라는 그 한마디가 어떤 선물보다도 따뜻하게 다가온 하루였기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