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과 상정일련(嘗鼎一련)
계란과 상정일련(嘗鼎一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7.25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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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상정일련(嘗鼎一련)이라는 말이 있다. 큰 솥 가득 끓고있는 국 맛을 알기 위해 굳이 솥 전체의 국을 다 마시지 않고 한 숟가락만 먹어봐도 안다는 뜻이다.

냉면을 먹으면서, 그 냉면그릇에 살포시 올라앉은 반 토막의 삶은 계란을 보면서 청주·청원의 지리적 생김새가 참으로 기구하다는 생각의 연상이 이어진다.

그 연상의 꼬리는 청주·청원의 통합문제로 연결되면서, 상정일련(嘗鼎一련)의 이치가 새삼스럽다.

최치원의 '황소에게 보내는 격문(檄黃巢書 또는 討黃巢檄文)'은 이 글을 읽던 황소(黃巢)가 자신도 모르게 침상에서 내려앉았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명문장이다. 난을 일으킨 황소는 당연히 이 격문으로 인해 사기가 크게 떨어졌고, 이에따라 글이 황소의 난을 평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글에는 "무릇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함을 행하는 것을 도(道, 正道)라 하고 위험한 때를 당하여 임기응변으로 모면하는 것을 권(權, 權道)이라 한다. 슬기로운 자는 정도에 입각하여 이치에 순응하므로 성공하고 어리석은 자는 권도를 함부로 행하다가 이치를 거슬러 패망하는 것이다. 인간이 한평생을 사는 동안 살고 죽는 것은 예측할 수 없지만 모든 일에 있어서 양심이 주관하여야 옳고 그름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을 전제로 황소의 난에 대한 부당성을 알리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시민사회단체에 의해 청주·청원의 통합 열망이 다시 불붙고 있다. 한쪽은 통합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다른 한 쪽은 자체 시 승격을 주장하는 팽팽한 대치의 구도에도 통합의 당위성은 이미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계란의 노른자와 흰자의 모습과 흡사한 청주·청원의 지리적 형국을 보더라도 통합은 결국 상정일련( )의 이치가 뚜렷할진대 굳이 편을 나누려하는 세태가 어리둥절하다.

계란은 우리가 흔히 아는 바와 같이 노른자나 흰자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이 병아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정작 병아리가 되는 핵심은 노른자 위 겉쪽에 자리 잡은 '배(胚)'이고 암탉의 난소에서 만들어진 세포성분의 노른자는 난관을 지나면서 흰자위와 껍질에 의해 보호를 받는 등 각기 오묘한 역할을 나누어 맡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병아리가 되기 위한 세포분열에는 적당한 온도와 배(胚)의 보호 및 단백질 위주의 초기 영양공급 역할을 하는 흰자의 기능 또 실제 세포로서 단백질과 지방 등 본격적인 영양공급을 맡는 노른자의 기능 등이 복합적으로 필요하다.

지금 소위 충북 소외론이니 충북 홀대론이니 하는 볼멘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고 수도권 규제 완화에 대한 우려가 위기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더군다나 충북이 애매한 □형 초광역개발권이 발표된 마당에 다시 청원과 청주가 서로 배타적인 축소지향형 개별 발전 모델을 추구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병아리의 가녀린 생명을 탄생시키기까지의 과정에도 이처럼 오묘한 과학적 통합의 원리가 적용되는 마당에 청주·청원이 각각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은 그 자체가 엉뚱하다.

노른자와 흰자가 따로 놀아야 한다는 시도가 지금의 위치에서 제각각의 입지만을 노리는 개인적 욕망이 작용하고 있는 경계의 구분은 아닌지 준엄하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계란의 배(胚)에 해당하는 후손과 이 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은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로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니 그 맨 마지막 구절은 知足願云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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