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각수 군수와 중원대학교
임각수 군수와 중원대학교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7.14 22: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김 승 환 <충북작가회의 회장>

괴산 제월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홍명희 문학비 주변의 <통일노둣돌 놓기>의 장소를 둘러본 후 소나무 그늘에서 유장한 괴강을 바라보았다. 낙화유수로 초여름의 산벚꽃 몇 송이가 별빛처럼 떠가는 것 같았다. 갑자기 "중원대학교 때문에 괴산이" 이런 말이 들렸다. 그 내용은 대학교가 괴산을 살릴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대학교 때문에 한 지역의 흥망(興亡)이 갈린다는 것은 좀 과장이겠으나 대학교와 관계있는 나로서는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인구가 줄어드는 괴산으로서는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는 것은 양쪽 모두 동의하는 바였다.

논쟁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대학교를 유치하는 것까지는 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0년에 걸쳐서 공사를 지연하고 또 교명을 바꾸는 대진재단측에 대하여 괴산군민들의 불신이 깊어졌다. 이 때 임각수 군수께서 단호하게 건축 허가 등 인허가를 취소하고 교육부에 통보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재단측에서는 2009년 3월 개교를 위하여 건축과 조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진재단으로서는 재단 내부의 사정도 있었을 것이고, 또 다른 장소도 물색해 보았을 것이며 괴산에 대학교를 설립했을 때 학생모집 등이 염려가 되어서 오랜 기간을 숙고했을 법하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2008년 여름, 괴산 우회도로 주위에 웅장한 중원대학교 건물이 그 자태를 드러내게 되었으니 참 사연이 많은 대학교였다.

여기까지는 상황설명이고, 제월대의 논쟁은 그 다음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중원대학교가 괴산군에 보탬이 된다는 쪽과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쪽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은 각각의 인식방법에 의하여 결정되므로 잘잘못이 아니다. 부정적인 쪽은 괴산군이 기대하는 것처럼 인구가 늘어나는 것도 아닐 것이고 재정에는 거의 도움이 안 될 것이며 오히려 종교적인 색채가 너무 강해서 괴산군의 이미지에도 문제가 생기리라는 전망이었다.

반면 긍정적인 쪽은 적어도 천여명 이상은 괴산에 상주하게 될 것이며 대학교는 문화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괴산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리라는 것이고 대학교이니만치 종교적인 색채는 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당시 나는 양쪽이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논쟁의 주제는 괴산의 중원대학교였지만 핵심은 '내가 사는 지역인 괴산을 살리자'라는 것이다. 이들의 논쟁에서 사랑하는 고향 괴산을 어떻게 하든지 번영되고 행복한 고장으로 만들자는 진심을 읽기에 어렵지 않다. 증평이 독립 자치단체가 되었을 때 괴산 군민들이 느낀 상실감은 무엇으로도 형언키 어려웠을 것이다. 여러 이유로 괴산 군민들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괴산의 인구가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보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기획한 것 중의 하나가 대학교 프로젝트였다. 역대 군수들께서도 심혈을 기울였고 '활기차고 풍요로운 괴산건설'을 표방한 현 임각수 군수께서 더욱 각별한 애정과 추진력으로 완성의 단계에 와 있는 것이 바로 중원대학교다.

나는 이런 차원에서 중원대학교가 잘되기를 기원하거니와 괴산군민들이 경부운하를 찬성하는 것도 이해는 해야 한다고 믿는다. 김환동 도의원께서 "경부대운하 건설은 충북 중·북부권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 바가 있다. 경부운하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쉽지 않은 발화였다. 하지만 괴산을 살리자는 묘약(妙藥)으로 경부운하에 기대를 건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민이나 청주시민 모두 괴산군민의 입장이 되고, 괴산군에 산다고 가정하면 괴산사람들의 노력과 희망을 이해할 수 있다. 괴산의 변화되는 모습이 기대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