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과 빵 한 조각, 그리고 대의민주주의
마지막 수업과 빵 한 조각, 그리고 대의민주주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7.1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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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알퐁스 도테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은 1870년 발생한 보·불(프로이센-프랑스)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프랑스는 이 전쟁에서 프로이센(지금의 독일)에게 패하면서 알자스, 로렌 지방을 빼앗기고 소설은 그 시간과 공간에서 모국어를 이야기한다.

예복으로 차려입은 아멜 선생님은 베를린의 지시에 따라 알자스와 로렌의 학교에서는 독일어만 가르쳐야 한다면서 프랑스어 공부의 끝인 '마지막 수업'을 진행한다.

'-어느 알자스 소년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소설 '마지막 수업'은 모국어를 겨우 쓸 수 있는 소년의 회한을 이야기한다.

'공부할 것을 날마다 내일로 미룬 게 알자스의 가장 큰 불행'이라고 말하는 아멜 선생님은 그러나 '한 겨레가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될지라도 자기 말만 잘 간직하면 마치 감옥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씀'으로 의미를 남기고 있다.

'프랑스 만세!'라는 흑판 글씨와 "끝났다 다들 돌아가거라!"로 마무리되는 소설 '마지막 수업'은 그런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한국사회는 내게 있어 정치의 출발점이고 내가 정치를 이해하며 학문적 방법으로 개입하는 산실이었습니다."를 화두로 시작하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마지막 수업'이 진행됐다.

'한국의 정치와 나의 정치학'을 주제로 가진 이 수업에서 최 교수는 "그간 과거 권위주의시기, 민주화, 그 이후의 민주주의, 현재의 촛불시위까지 한국의 현실문제를 다루다보니 운동권정치학자, 친북좌경, 좌파 정치학자 등의 꼬리표를 달았다"며 자신의 역정 또는 궤적을 설명한다.

촛불과 광장, 직접민주주의가 넘실거리는 2008년 한국의 현실에도 그는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정당정치의 복원내지는 활성화를 중심으로 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제도 강화와 이를 통한 운동의 역할을 축소하는 문제"라는 다소 민감한 부분도 이 '마지막 수업'에 포함시켰다.

물론 최장집 역시 한국 특유의 유교주의의 가치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안다. 하여 그는 "(촛불집회가) 보수적 프로그램을 좌초시킬지도 모른다는 보수적 정치학의 관점이나, 운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진보적 관점을 모두 수용하지 않는다"면서 소위 예외없는 양시 양비론적 형식을 취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땅에서의 정당정치의 실종은 심히 우려된다.

중국철학을 전공한 계명대 철학부 임수무 교수는 1980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시민과 함께하는 목요철학 세미나'를 주도해 왔다.

지난 22일 499번째 '목요철학 세미나'에서 임 교수는 고별강좌를 했다. 그는 인문학의 위기를 빵 한 조각으로 설명한다.

며칠 굶은 아버지와 아들 앞에 빵 한 조각이 생겼을 경우 이를 공평하게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논하면서 인문정신을 말한다.

"두 조각으로 똑같이 나누는 것이라는 답변이 흔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는 임 교수는 "이는 경영학이나 경제학적 접근"이라며 아들이 빵 한 조각을 전부 드리고 아버지는 절대로 그 빵을 혼자 먹지 않는다는 믿음이 '인문정신'이라고 말한다.

유용성과 효용성만을 따지는 세태에서 벗어나 잘 사는 것만이 아닌 인문정신을 회복해 사람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알퐁스 도테의 모국어와 최장집의 대의민주주의, 임수무의 빵 한 조각은 어쩌면 사람이 사람으로서 유지해야 할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일맥상통하다.

언제까지 촛불을 치켜들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2008년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모성과 대의민주주의의 실종, 인문학의 위기는 결국 '사람답게'라는 평범한 본질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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