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과 가라지의 비유
밀과 가라지의 비유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6.1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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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이 수 한 <모충동천주교회 주임신부>

어린 사람들은 예외겠지만 연세든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농사에 대한 경험이 있고 추억이 있어서 농사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친숙하다 하겠습니다. 저의 신분이 천주교 신부이다 보니 오늘은 성경에 나오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가지고 요즈음의 세태를 설명해보려 합니다.

옛날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경지는 천수답이었습니다. 저수지나 댐을 만들어 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쓰는 방식의 농사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존하여 농사를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이 부족할 때는 서로 자기 논에 물을 대려고 싸움이 나곤 했습니다. 오죽하면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과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을 비교했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서로 싸움을 하다가 안되면 원수가 되고, 원수가 되면 밤에 몰래가서 원수의 논두렁을 다 터놓아 물을 빼 버리는 것이 복수의 한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원수의 밀밭에 가라지씨를 뿌리는 것이 원수를 갚는 복수의 한 방법이었나 봅니다. 어쨌든 가라지는 밀밭에 자라는 억센 잡초를 말합니다. 이것이 처음에는 밀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에 경험 많은 농부들도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이 크게 자라고 나면 밀과는 엄연히 달라서 어린이라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는 가라지가 밀의 뿌리를 덮고 있어서 뽑고 싶어도 뽑지를 못합니다. 가라지 때문에 밀이 뽑힐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논에 자생하는 피를 생각하면 가라지가 어떤 종류의 풀인지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나 피가 잘 구분이 가질 않지만 자라고 나면 벼와 피는 아주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되지요. 피가 자라 열매를 맺게 되면 그것을 미끼삼아 개구리를 잡던 기억이 아마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밀이 선이라고 한다면 가라지는 악이라 하겠습니다. 밀이 선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가라지는 악한 사람인 것입니다. 악과 선은 쉽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도 쉽게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만일 사기꾼이 사기꾼처럼 생겼다면 이 세상에 사기를 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밀과 가라지의 구분이 힘들 듯 악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교묘해서 얼른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악은 언제나 그럴 듯하고 믿음직스럽고 진실된 선으로 자신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섣불리 악과 선, 악인과 선인을 판단해서는 안되며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악의 정체는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악으로 판명되었다고 해서 서둘러 제거하려 해서도 안됩니다. 밥사발 위에 파리가 앉았다 해서 밥사발을 파리채로 때릴 수는 없습니다. 다리에 종기가 났다 해서 다리를 칼로 잘라서도 안됩니다. 괴로워도 참아야 하며 억울해도 기다려야 합니다. 악을 잘못 제거하려 하다가는 오히려 선이 크게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밀을 뽑게 될 수도 있듯이 악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선이 제거되는 상황도 생겨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선한 이와 악한 이, 크고 작은 이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것이 옳은지는 역사가 판단할 일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1987년 6월10일 민주화항쟁 기념일이네요. 그 당시의 폭력집단이 오늘의 민주화를 가능케 한 선량한 집단이었다는 것이 역사의 평가인 것을 보면 정말 아이러니한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이 나라를 위한 사람은 누구인지, 재협상 불가를 외치는 정부인지, 아니면 촛불을 든 국민인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이 나라 이 백성을 위한 현명한 정부와 독자의 선택을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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