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삶
깨어있는 삶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3.06.08 16: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론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저울이 온갖 물건의 무게를 재는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먼저 0점 조정이 전제돼야만 한다. 사람도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기 위해선 마음을 0점 조정함으로써 지공무사한 순수의식을 회복-유지해야 한다. 모든 종교인 및 수행자들이 기도 및 수행 등을 통해 업식을 녹이는 일이 바로 마음의 0점 조정이다. 마음의 0점 조정만이 `나 없음'의 지공무사한 마음으로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면서 행복한 삶을 담보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 없음'의 무아행(無我行)이 정사, 정어, 정업의 팔정도며 보살행일 뿐, 특별한 신통 묘용의 보살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온갖 주견을 비우고 욕심 욕망에 따른 모든 악연을 벗어나 대 자유인으로 거듭나는 것이 공중 들림의 휴거일 뿐 실제로 우리 육신이 공중으로 들림을 당하는 일은 삼류 무협지 수준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욕심-욕망에 기반을 든 온갖 분별 망상을 쉬고 마음을 0점 조정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좋다는 생각에 안주한 채,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지공무사한 잣대로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판단하면서, 처한 상황에 맞게 차별지(差別智)를 발현해야 한다. 차별의 지혜를 통해 분별한다는 것은, 0점 조정된 저울이 자신과 친한 사람의 물건이라고 해서 무게가 많이 나가고, 자신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서 무게가 적게 나간다고 보는 일 없이 정확하게 무게를 재는 이치와 같다.

공자님은 “마을 사람 모두가 그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어떠냐”는 자로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불여향인지선자호지(不如鄕人之善者好之) 기불선자오지(其不善者惡之)” 즉,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보다는, 마을 사람 중에 착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악한 사람이 그를 미워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도둑과 내통하며 도둑들에게 인기 높은 경찰 및 불의를 저지른 악인과 한편이 돼서 법을 파는 법조인은 무늬뿐인 경찰이고 법조인이다. 도둑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경찰, 악인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법조인이 훌륭한 경찰이고 법조인이다. 마음을 0점 조정해 자신만의 이득을 추구하는 이기심을 극복했다면, 지공무사한 마음으로 공동의 선을 위한 선악미추 득실시비를 자유자재로 굴리면서 파사현정(破邪顯正) 해야 한다. 현실을 외면한 채, 홀로 독야청청하는 것이 아니라, 흙먼지 날리는 세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군자의 대로행이며 보살행이며 이웃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극기복례한 군자와 반야 지혜를 밝힌 보살, 성령으로 충만한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기 위해서, 크게 죽어 크게 살아나는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 오랜 업식(業識)에 끌려가면서 자신만의 어두컴컴한 우물 속 삶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순간 오롯하게 깨어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아차려야 한다. 온전히 깨어서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수행은 충분하며, 행복한 삶을 앞당길 수 있다. 지금 나는 신구의(身口意) 즉, 의식과 입과 몸으로 어떤 생각과 어떤 말과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매 순간 온전히 깨어있는 지공무사한 마음으로, 나아갈 때 나아가고 멈출 때는 멈추며, 물러설 때 물러서는 대 자유의 걸림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