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정리하며
책장을 정리하며
  • 이수안<수필가>
  • 승인 2016.01.3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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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이수안

책장에 책이 너무 많다.

한 번 읽고서 다시는 펴지 않은 책, 한 번도 안 본 책, 몇 번이고 읽은 책 등등. 두 겹으로 쌓아도 책이 남아 그 기에 사람이 눌리게 생겼다.

고민 끝에 특단의 조치를 하는 중이다.

다시 볼 책, 귀한 인연으로 보내준 개인집, 내가 활동하는 동인지 등은 일단 책장에 꽂는다. 문예지에서 구독하는 수필집은 감동적인 작품만 찢어서 따로 보관한다. 한두 번은 다시 읽을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다. 이것이 한 권 분량으로 모이면 얼마 전 구입한 가정용 제본기로 제본해서 책장에 꽂는다. 제본은 서툴지만 어설픈 나에게는 귀한 양분이 되어줄 옹골진 내용의 귀한 책이다.

이렇게 책이 넘쳐나는데도 나는 아직 개인집을 내지 못했다.

한 문우는 등단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개인집을 안 냈으니 작가로서 직무유기라며 올해는 꼭 책을 낼 것을 종용했다.

책을 못 낸 것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느라 우선순위에서 밀린 탓도 있고, 내 글이 다소 어둡지 않나 하는 자책 탓도 있다. 나야 내 안에 고인 물을 퍼내는 작업을 한 것이지만, 독자의 처지에서 보면 책 한 권의 글이 회색빛 일색이라면 무슨 재미로 읽겠는가. 그러던 내가 접때는 문화예술육성기금을 지원받고자 신청했다. 그런데 벌써 걱정이 앞선다. 책을 내는 것이야 작가 자유지만 끝까지 읽어 줄 독자가 몇 명이나 될까 싶어서다.

지금은 책의 홍수시대, 그 많은 출판물 중에서 끝까지 읽을 작품을 고르는 일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인쇄물이라면 신문까지도 꼼꼼하게 읽던 때도 있었다.

벌써 40여 년 전의 일이다. 나는 눈에 띄는 책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읽었다.

더 읽을 것이 없으면 묵은 신문을 읽었다. 그때 우리는 누에치기를 했는데, 잠실 방에는 누에채반에 깔려고 신문뭉치가 늘 있었다. 나는 일하다 말고 자주 신문에 눈을 박고 있다가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었다.

더러는 공부하러, 더러는 돈을 벌러 친구들이 떠난 동네. 외로움 타던 나는 한자 때문에 앞뒤 문맥으로 겨우 이해하던 묵은 신문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고는 했다. 생업에 바쁜 어머니가 이팔청춘 낭만 가득하던 딸의 심리를 어찌 이해할 수 있었으랴.

어머니의 꾸지람 후에 나는 더 큰 도전을 했다. 그때 호젓한 고향마을 회관에는 마을문고가 있었다. 마을문고는 내 키보다 낮은 책장에 농사관련 책 몇 권이 전부였다. 나는 동네 동생들과 집집마다 다니면서 읽지 않는 책을 기증받아 책장을 채웠다.

면내 각 기관은 물론 도시로 떠난 분들께 책을 보내달라는 편지도 보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직접 연락이 닿은 곳에서는 물론, 건너 건너 이야기를 듣고 책을 보내주는 사람도 있었다.

책이 너무 많아지자 이장님이 앵글로 책장을 짜 주셨다. 나는 장르별로 책을 분류하고 번호를 매겨 책장을 매웠다.

만화책·잡지·수필집·시집·소설·위인집·역사책 등 없는 책이 없을 정도였다.

마을회관 방은 바닥에서 천장까지 사방의 벽을 책으로 채운 도서관으로 바뀐 것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책 대여해 주는 날을 정했다. 책을 빌려주는 날은 회관의 불이 밤늦도록 꺼지지 않았고 동네 동생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이제는 책이 넘치는데다 너나없이 책 읽을 시간 내기 어려울 정도로 바쁜 시대다. 내가 낼 책도 누군가에게 읽히지 못하고 분리수거함으로 바로 가는 건 아닌가 싶어 조심스러워 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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